내가 행복하려면 감사함을 알아야한다.
행복해지려면 감사함을 알아야 한다.
감사함을 알아야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이 말을 많이 들어봤다
내면 소통이나 마음챙김 같은 주제에는 항상 감사함이라는 소주제가 따라다니곤 하니까
이제는 감사함이 사실 그렇게 어려운 주제는 아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들, 유튜브에서는 내 영상을 구독해주시는 분들, 회사에서는 내 의견을 잘 들어주는 팀원들, 모두에게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유명한 사업가도 아니고, 특별히 생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닌 한낱 인간일 뿐인데
누군가가 순전히 자신의 시간을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간을 내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 아닐까
(나의 의견을 생각하는데 바쁘게 머리를 굴리는대신 나는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을까? 하면 순전히 들어준다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감사함이라는 감정이 참 어려웠다.
세상은 험난하고 오직 나에게만 모질게 느껴질 때,
"어떻게 감사함을 느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때를 돌아보면, 우울함과 비관성, 비판적인 시각이 기본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은 화목한 가정에서' '사이 좋은 친구들과' 지내는데 '왜 나는 그렇지 않을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이나 상황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지원을 받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새뱃돈을 모아 독서실비와 학원비를 마련하고, 핸드폰 요금을 내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사생활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학교 때까지도 방문을 닫지 못했고, 저녁 5시면 집에 오라는 전화가 오고, 가족들은 굳이 내 방에서 전화를 하곤 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결혼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보수적인 집이었다.
여자가 공부해서 뭐 하냐는 분위기였고,
이것말고도 이것저것 해서 일반적인 가정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점은, 내가 봤을때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정사에 대해서는 더 그렇더라.
개인 사업을 하며 친구들과 잘 웃고 겸손하니 잘 사는 것 처럼 보이는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집에 몇 십억의 빚이 있어서 안해본 일이 없었다.
나 또한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가 유복하고, 사랑 많이 받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줄 아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나 저러나 어쩌면 그런 좋은 오해(?)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그만큼 건강하게 성장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거는 통제할 수 없는 환경 탓을 했지만, 이제는 내 손으로 인생을 만들어가는 권리와 자율성을 찾으면서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내가 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문제를 인식한다.
2. 통제가능한 영역과 통제 불가능한 영역의 선을 명확히 긋는다.
3. 통제가능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을 조성한다.
4. 실천하며 태도를 바꾼다.(자기 효능감을 향상시킨다)
5. 과정을 반복한다.
이 사이클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감사함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것 같다.
어쩌면 자존감과 연관된 것 같기도하다.
이는 한순간의 깨달음이 아니라, 사이클을 무수히 반복하며 조금씩 변화를 겪었고
어느순간 뒤를 돌아보니 '나 꽤 괜찮아졌는데?' 또는 '나 좀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깨닫기까지는 어렵지만, 알고 나면 쉬워진다.
'2+2=?' 하면 4가 바로 떠오르기까지, 우리 얼마나 부단히 노력하였나.
유치원때의 경험을 되새겨보자. 숫자의 개념, 더하기의 의미를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감사함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감사함을 느끼기가 쉬워진다
날씨를 예로 들면, 항상 맑고 화창한 날씨만 있는 게 아니다.
비가 오고, 흐린 날도 있고, 추운 날도 있다.
다양한 날씨를 경험하기에 특정 날씨를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경험을 하며 감사함을 느끼는 법을 배워가는 것 같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주는 선물이 상대에게는 그리 소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감사해줄 때 나는 그 자체에 감사함을 느낀다.
한 번은 내 이야기를 듣고 친구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이미 지나간 일들,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과거기 때문에 나는 담담했지만,
친구가 내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공감해준 것에 큰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과거가 긍정적으로 바뀐다거나 하는 통제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해도,
나를 대신해 아파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꼈다.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은 정말 기적과 같다.
친구 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 모든 형태의 사랑말이다.
사랑은 때때로 헌신을 동반하지만, 그 헌신이 부정적인 의미의 포기가 아닌,
'우리'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일 수 있다.
때로는 다투고 상처를 주고받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함께 커피를 마시며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경험인가.
내가 아무리 나를 부정해도, 사랑과 관계라는 연결 속에서는 완벽한 부정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사랑의 가치를 깊이 깨닫게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야말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드는 최고의 동기부여라고 생각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성장한 나를 돌아볼 수 있음에, 그리고 그런 관계와 환경을 만났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결국,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당연한 것은 없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감사함을 느끼기 쉬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