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nowisever

사랑이란 뭘까?

신뢰와 수용, 그리고 열망

by 세비지

어제 꽤 재밌는 만남이 있었다.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소개시켜주던 자리였는데,

어쩌다 보니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새로 만난 친구에게 물었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새로 본 친구는 "사랑? 사랑이라..사랑이 뭐지.."하며 한참 기억을 뒤적이는듯 보이더니

"뭐라 말할 수 없는게 사랑인거 같은데?"라고 말했다.

우리 셋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최근, 아마도 작년부터 이번년도까지 나의 가장 주된 관심사는 '사랑'이어서,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마다 "사랑이 뭐야?"하고 물어봤다.

그 중 한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감정을 너무 이성적으로 생각해. 야, 사랑은 느끼는거야. 논문쓰냐?"

그러더니 덧붙인 이야기는

"하루 봤어도 일 년이 생각나는 사람이 있고, 10년을 만났어도 하루도 생각이 안 나는 사람이 있지. 말이 안되잖아? 또 새벽 2시에 서울에서 포천까지 달려가 얼굴 한 번 보고 온다든가. 그런것들,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것들. 이런게 사랑 아니냐?"


다른 친구와는 우스갯 소리로 "사랑은 정신병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가장 정확한 은유일지도 모른다. 이성적인 판단을 뛰어넘어 우리를 행동하게 만드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이니까.

3782195c660b02bac46c83ed3d319f56_res.jpeg (논외지만, 대답을 모아보니 내 친구들은 꽤 낭만파인것 같다)




많은 친구들의 대답을 들어보면 공통적인 패턴이 있었다.

첫째, 감정적으로 강한 동요가 있다.

둘째,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행동을 기꺼이 하게 된다.

물론 대부분 연인 간의 사랑을 떠올리며 대답했지만, 나는 사랑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특정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형태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같다고 믿는다.


다시 어제의 대화로 돌아가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디서나 사랑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난 너랑도 사랑이 있다고 생각해. 친구간의 사랑을 '우애'라고 하잖아. 그리고 동료간의 사랑, '동료애'라던가 '가족애'도 있지. 더 나아가면 '인류애'도 있지. 상대방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혹은 도움이 되고 싶어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사랑인 것 같은데"


그러자 어제 새로 만난 친구는 예상 밖의 대답을 해줬는데,

"흠.. 나는 남자라 그런지 모르겠는데, 난 반대인 것 같아. 그냥 이 사람이라서 밑바닥을 보여줄 수 있는 거?"

처음엔 그의 의견이 내 생각과 상반된다고 여겼다. '최선을 다하는 것'과 '밑바닥을 보여주는 것'이라니, 단어의 간극이 너무 크지 않은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니, 결국 같은 것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봤던 게 아닐까. 내가 바닥을 보여줘도 이 사람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 안정감은 결국 '신뢰'에 대한 것이니까.

우리는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최선의 나로 노력하고, 또 최선의 나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대방을 보며 신뢰감을 느낀다. 그렇게 내가 바닥을 보여줘도 이 사람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는다.


즉, 내가 말한 "최선을 다하는 것"과 친구가 말한 "밑바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결국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쪽은 상대방을 위해 더 나은 모습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고, 다른 한쪽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줄 것이라는 믿음인 것이다.


더 나은 내가 되고자 하는 열망과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 포용의 상호작용 속에서 '신뢰'는 형성된다.

결국 사랑은 어쩌면 ‘신뢰’라는 다리를 통해 서로를 향해 걸어가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그것은 정의하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정신병처럼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 있으면서도, 신기루처럼 실체가 없어 보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관계라는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모습 또한 신기루와 닮았다. 하지만 그 정의할 수 없음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을 찾고, 느끼고, 표현한다. 연인간의 사랑, 친구간의 우정, 동료간의 신뢰, 가족간의 유대 - 이 모든 것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그 본질에는 같은 진실이 흐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서로를 향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수용, 그리고 그 신뢰 속에서 피어나는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다짐이고 행동이며 선택의 연속이 아닐까. 사랑이란 이름 아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기대고, 성장한다. 그래서 사랑은 신기루처럼 정의할 수 없어도, 그것이 만들어 내는 흔적들은 현실에 깊이 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흔적을 따라 걸으며, 다시 사랑을 찾아 나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 (feat. 블랙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