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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 (feat. 블랙코미디)

그러면 왜 살아?

by 세비지

금요일, 직장 동료 S(38세)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흰머리도 많아지고 머리도 많이 빠진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보며 말했다.

"너도 흰머리 많네. 염색해야겠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 뭔 염색이야. 어차피 사람은 다 늙고 다 죽어."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J가 고개를 숙이며 웃더니 말했다.

"그럼 왜 살아요?"

그러자 S가 덧붙였다.

"그럴 거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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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정적이 흘렀고, 우리는 모두 푸하하핰 거리며 폭소했다. 누군가는 굉장히 불편할 수도 있는 대화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농담일 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늙고,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다. 나에게 살아가는 이유란 이런 농담 속에서 나온다.

이런 유쾌한(?) 무례한 동료를 가졌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무례한게 일상이라 이제 무례함을 못느끼는 경지)



정말 웃기게도 우리는 직장 동료라기보다 일 외적으로는 친구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업무적으로는 엄격하게 대화하지만, 그 외적인 순간엔 거침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다.

"S님, 이거 제가 저번에 전달 드린 건인데요. 여기는 데이터 이렇게 들어가면 안돼요. 노션으로 제가 멘션 다시 드릴게요. 참고해보시겠어요?" 라고 딱딱한 말을 주고 받다가도


S가 주말에 바다 갈 거라고 말을 하면 나는 한마디를 거든다.

"같이 갈 사람 없잖아요?"

그러면 S는 조용히 가운데 손가락을 나에게 들어보인다.

(참고로 S는 나보다 5살이 많은 개발자다.)


또 J라는 개발자는 내 옆에 앉아 있는데,(CTO다)

옆에서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이면 나는 또 농담칠 준비를 한다.

"왜? 잘 안돼? 뭐가 문제야?"

"하아.. 머리 너무 많이 썼는데요?"

"어떡해 내가 플러터알면 해줬을텐데.. 자바스크립트 밖에 몰라서 그래도 일 많으니까 얼마나 좋아~ 행복하겠다~" 라고

그러면 그는 본인의 머리카락을 약간은 장난스럽게, 또는 짜증스럽게 헝클어뜨린 후 나를 조용히 째려본다.


이제는 얼굴만 봐도 웃는다.

아침에 마주치면 S는 나한테 웃으면서

"물 안나와요?" 물어보면 나는

"아 어제 씻었어!" 하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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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하루 회사에서 웃겼던 일들이 떠오른다. 혼자 끅끅 웃다가 잠드는 일이 많다. 이런 맛에 회사를 다니는 것 같기도하고(내일은 어떤 장난을 칠까 이런 설렘이 있다)

이런 저런 당연한 갈등도 있지만, 이런 주위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에 의미를 찾는 것 같다.


또 뭐가 있을까.

내가 모니터를 보며 끙끙 앓고 있으면

조용히 지켜보다가 도와줄건 없는지 물어보는 따뜻함?

어쩌면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주위 사람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런 관계들이 내게 주는 것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다. 매일 아침을 기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동기가 된다. 그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지만, 함께 웃고 살아가는 순간들이 삶을 의미를 더해준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이 평범하지만 특별한 관계들을 되내이며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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