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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타는 친구와 찾아오는 보호자들

무척 사적인 이야기 : '우정'에 대하여

by 세비지

"당신 주변의 다섯 명이 당신을 보여준다." 흔히 듣는 말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의 성향과 삶의 방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말이 처음엔 단순한 심리학적 통찰처럼 들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게는 하나의 진실로 다가왔다.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을 떠올릴 때마다 그렇다.


사실 나는 관계 자체에 서툰 편이다. 연락 주기는 일정하지 않고, 잘 되는 날보다 안 되는 날이 많다.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일도 드물다. 적당한 스트레스에는 짜증스럽게 이야기를 꺼내긴하지만, 정말 버거운 순간이 오면 그저 말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러면 친구들은 나와의 관계에 대해 '친구'가 아닌 '먼 무언가' 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곁의 친구들은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었다. "왜 연락이 안 되냐?"고 다그치는 대신, "J야, 힘들 때 언제든 말해. 언제든 도와줄 수 있어. 돈도 너가 필요하면 빌려줄 수 있어." 같은 말을 서슴없이 건넸다. 그 말들 속에는 어떤 계산이나 기대도 없었다. 그저 나라는 사람에 대한 진심뿐이었다.


특히, 그들의 무조건적인 믿음은 나를 여러 번 변화시켰다.

"J는 멋지니까~", "넌 무조건 잘 될 거야." 같은 말들이 그들의 믿음에 부응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번졌다.

그렇게 나는 더 앞을 향해 누구보다 빠르게 나아갈 수 있었다. 항상 세상과 친구들에게 깊이 감사했고, 동시에 미안함이 뒤따랐다.


어떤 날은 친구와 카페에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나랑 친구 왜 해?"

"내 주변엔 좋은 사람들 밖에 없어, 근데 나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 친구들은 늘 낄낄거리며 같은 대답을 해준다.

"네가 좋은 사람이니까. 바로 우리같은 사람들이~ 너 주변에 있는 거야."

그 말을 들을 때면 웃으며 "맞지, 맞지" 하며 끄덕이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5년이 지나고, 8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변했다. 이제는 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잠수를 타기도 하지만, 이전에는 문제가 해결된 후(그렇기에 언제가 될지 모른다) "뭐해?"라고 아무렇지 않게 연락했다면, 적어도 지금은 "요즘 왜 이렇게 조용해?"라는 물음에 "아, 요즘 이게 문제여서 이거 하느라 바빴어."라고 답할 정도는 되었다.

그러면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랬구나. 그래도 생존신고는 해라."

그렇게 친구들은 내가 연락이 안되면 '문제가 있군'이라고 판단을하고 전화를 하거나, 반찬을 싸들고 집에 찾아온다. 거의 보호자다. 어디서 고독사할 일은 없겠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이해와 믿음, 신뢰 같은 것들이 쌓여갔다. 그들은 나의 불완전함을 알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너그러움을 배우고 있었다. 아마 이건 나의 관점이니, 친구들은 나에게 어떠한 점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불완전함을 알면서도 관계를 이어왔다. 수많은 시간과 이해, 믿음이 차곡차곡 쌓인 덕에, 이제 우리의 사이는 조금 특별해졌다. 거리감조차 하나의 언어처럼 편안한, 그런 관계로 말이다.


돌이켜보면, 내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성장시켰다. 누군가는 내게 책임감을, 누군가는 따뜻함을, 또 다른 누군가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들이 내 삶에 남긴 흔적은 이제 나의 일부가 되었다.

그 친구들이 내 주변의 다섯 명이라면, 나는 그들을 닮아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아니면, 나는 모르겠지만 됐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것이 우정이란 이름을 쓰는 사랑의 아름다운 선물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더 나은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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