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필요한 따뜻한 시선
무례한 말과 행동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어느 날, 취객 한 명이 경찰과 언성을 높이며 대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시민이 그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격앙되었던 취객은 안아준 시민을 꼭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고, 상황이 진정되었다. 단순한 포옹이 그의 분노를 녹여낸 것이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한 취객이 버스에 올라타 여기저기 욕을 퍼붓고 있었다.
이를 본 버스 기사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약주 한잔하셨군요."
"그래 했다, 왜 이 새끼야!"
"고단하시죠. 저도 요새 삶이 참 팍팍합니다."
취객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듯 되물었다.
"뭐요?"
"제가 편안히 모실게요. 어디까지 가시나요?"
"...신동아 아파트요."
"네, 날씨가 좋네요. 차문 열고 바람 좀 느껴보세요."
그 순간, 버스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분노로 가득했던 취객은 조용해졌고, 결국 목적지까지 아무런 소란 없이 도착했다. 기사님의 한마디가, 그의 거친 감정을 누그러뜨린 것이다.
비슷한 일이 또 있다.
사격 선수 김예지는 2024 파리올림픽 당시 25m 권총 본선에서 더 정확하게 쏘려다 욕심을 부렸고, 0.01초 차이로 0점 처리가 되었다. 그렇게 본선 탈락 후 쿨한 인터뷰를 하며 많은 악플 사례를 받았다.
몇몇 시민들이 그녀의 SNS에 몰려가 "올림픽이 장난이야?"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하나 직접 답장을 남겼다.
“절대 올림픽을 가볍게 생각해 나가지 않았고, 저는 말의 힘을 믿기에 부정적인 말을 저 자신에게도 하지 않는다, (그 인터뷰는) 저 자신을 달래려고 한 말인데 안 좋게 보셨다면 죄송하다, 하지만 올림픽을 열심히 준비했고 앞으로도 열심히 할 테니 지켜봐 달라"
그러자 욕설을 남겼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성이 과했네요, 죄송합니다. 다음 올림픽 기대하겠습니다"라며 태도를 바꾸었고, 오히려 그녀의 팬이 되었다. 이처럼 김예지 선수의 진심 어린 태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냈다.
이 사례는 앞선 사례들과는 조금 다르다. 앞선 경우들이 따뜻한 태도와 공감으로 상대의 분노를 녹였다면, 김예지 선수는 진정성 있는 소통을 통해 비난을 이해와 응원으로 바꾼 것이다. 그녀는 방어적 태도나 반박 대신,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미래에 대한 약속을 전했다. 이러한 진솔한 소통이 비난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만들었다. 결국, 따뜻한 공감과 진정성 있는 소통 모두 상대방의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사람들은 종종 분노를 어디에든 쏟아낼 곳을 찾는다. 왜일까? 아마도 그들의 삶이 잘 풀리지 않아서, 팍팍한 현실을 토로할 곳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화를 낼 때를 떠올려 보자. 감정이 들끓는데, 이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왜 답답한지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결국,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무작정 화를 내곤 한다.
결국, 그들은 세상에 "나 여기 있어!""나 힘들어, 알아줘" 라고 외치는 외로운 존재들 아닐까?
그렇기에, 누군가가 거친 말과 행동을 보일 때, 우리는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분노 뒤에 숨은 진짜 감정은 무엇일까? 만약 그 순간, 누군가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면, 혹은 진정성 있는 대화를 시도한다면, 그들은 마치 위로받은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며 마음을 열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점점 더 빠르고, 각박해지고 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분노와 좌절은 쉽게 타인을 향한 무례함으로 표출된다. 이는 수 많은 악플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우리가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사례들은 그 무례함의 순환을 멈출 수 있는 힘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무례함에 무례함으로 대응하는 것은 가장 쉬운 길이지만, 결코 가장 현명한 길은 아니다. 한 번의 포옹, 공감의 한마디, 진정성 있는 대화가 분노의 벽을 허물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당신의 감정을 이해합니다.'
'당신의 말이 들립니다.'
이러한 태도가 세상을 바꾸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작은 변화들이 모이면, 현재 사회에 만연한 분노 에너지는 이해와 공감의 에너지로 전환되지 않을까.
(사실, 쉬운 일이지만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런 행동이 뉴스에 오르고, 사람들은 이를 멋지다고 칭찬한다.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정책이나 제도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각자가 일상에서 실천하는 아주 작은 따뜻한 시선과 행동, 그리고 진실된 소통의 힘. 그것이야말로 분노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