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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Aug 22. 2020

꼰대같다는 말이 더 꼰대같다 / 박브이

꼰대에 대하여

  꼰대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누가 어떠한 상황과 맥락에서 그런 얘기를 들었는지는 일일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당시의 기분은 다소 불쾌했던 동시에 당혹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을 정정하기 위한 말들을 떠올리기 위해 분주했었다. ‘꼰대’라는 말이 단순히 나이 많은 이를 비하하며 부르는 말에 불과했다면 나오지 않을 거부반응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절대 입고 싶지 않은 옷이었음에 분명하다.


  이러한 찝찝한 경험은 ‘도대체 꼰대가 뭐길래’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꼰대라는 단어의 본질은 ‘권위주의에 대한 냉소’다. 나이가 많거나 연차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획득한 권위의식에 대한 나이가 적고 연차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의 비판이자 질타이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꼰대는 일방향적인 단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나무랄 때 쓰이면 위화감이 생긴다. 아랫사람만이 가진 특권과도 같은 말인 것이다. 그래서 아랫사람끼리 서로 ‘꼰대같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우리는 그러지 말자’는 타산지석의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위아래의 구분에만 천착해버리는 순간 꼰대의 의미는 조금 달라져버린다. 꼰대라는 말로써 지적할 수 있는 범위는 윗사람이 그 위치에서 가지게 되는 권위의식과 그에 수반되는 문제들까지여야 한다. 윗사람이라는 사실 그 자체까지 포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부딪치는 많은 문제들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격할 때 남용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귄위적인 부분들을 포함하여, 아랫사람의 입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윗사람의 요소들이 전부 ‘꼰대’에 내포되어 버린다. 윗사람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또는 해야 하는 지도나 조언, 부탁이나 요구, 본인이 아랫사람이었을 적을 추억하는 것 까지 모두 꼰대스러운 것이 된다. 꼰대같음을 판단하는 데 있어 그 의도와 내용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꼰대가 윗사람이 아닌 아랫사람을 향해 사용될 때 더 애매한 문제가 생긴다. ‘어딘가 권위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맥락의 ‘꼰대같다’는 마땅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비판이 될 수 있다. 이는 앞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권위적이지 않은 윗사람이 되자’는 자기 반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면 윗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전제로 사용하는 ‘꼰대같다’는 공허한 비난에 불과하다. 꼰대의 기준이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짚지 않는다. 그저 ‘꼰대같다’는 말로 치부해버릴 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부정적인 요소의 배제를 떠올려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윗사람이 되지 말자’는 선언은 우습게까지 들린다.


  혹자는 이런 생각조차 꼰대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일만한 부분들이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꼰대는 지양해야 할 대상이라고도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권위적인 의식을 지닌 이들을 의미할 때에만 그렇다. 윗사람이기 때문에 가지는 부정적인 부분은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실제로 그런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많기 때문이다. 지양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야만 그 방법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개별성이 매몰되어 있는 ‘꼰대’는 실체가 무엇인지, 있기는 한 것인지 윤곽조차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꼰대같다’는 말로 간단히 치부해버리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더 권위적으로 들린다. 꼰대같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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