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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Dec 10. 2021

머글이더라도 괜찮아 / 우드수탁

'덕'업상권

  누군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왠지 모르게 성숙한 책(마치 '정의란무엇인가'같은 웅장한)을 말해야 하나 망설이다 결국 '해리포터'라고 대답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에 그 만큼의 임팩트를 남긴 책은 없었다. 물론 '시선으로부터'라는 책도 너무 좋았고, '밤이 선생이다'도 몇 번을 다시 읽지만 그래도 이 마법 세계의 대장정은 이길 수 없다. 현실성이 미덕이 되어버린 지금 다시 읽어 보아도 빈틈없이 빠져드는 세계관은 '찬란하다'라는 표현도 부족하다. 벌써 덕후의 냄새가 폴폴 풍기더라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본인 덕질 세계의 외동 자식이나 다름 없으니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사실 해리포터 덕후라고 하자니 민간인이나 다름 없는 수준이긴 하다. 원체 무언가에 빠졌다가 금방 식어버리고, 현실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향인지라 덕질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해리포터만큼은 꽤 진지하다.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영화 티켓 수나 전집 독파 횟수로 따진다면 인서울 랭커를 감히 노려볼 만하다. 물론 이런 정량적인 수치보다는 그저 진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왠지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덕질의 방법은 다양하지만, '내 지갑 가져가' 방법이 가장 기본이 아닐까. 고이 모은 통장을 텅장을 만들더라도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투자하는 마음은 진정한 덕후의 기질임에 부정하지 않는다. 본인 또한 콘텐츠를 현실로 가져와 마음껏 씹고 맛보는 즐거움을 알고 있다. 내 방 한 칸 내어질 수 있었다면 아마 그리핀도르 기숙사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이 놈의 서울 집값..) 그럼에도 내가 행하는 가장 강력한 덕질은 그 세계관이 가상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 누가 판타지 소설이라고 우겨도 해리포터는 우리 땅..이 아니라 우리 세상의 일부라고 믿는 것이다.


  진짜 마법사 세계가 있다면 어떨까? 벌써 빨간 2층 버스가 동호대교를 폭주하는 상상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한국에 마법 학교가 있다면 그건 아마 깊은 산 속 골짜기에 있을 것이고, 유교 문화가 깃들어 있겠지. 부엉이보단 참새나 까치로 소통하지 않을까. 지금 현실엔 어떻게 관여하고 있을까. 코로나는 분명 어둠의 마법사 소행이고 아직도 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분명 머글인거겠지. 아직도 편지가 오지 않았으니까..창문을 열어 놓고 자도 연락이 없는 거 보면 본인이 머글이거나, 마법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데 둘 중에 하나를 고르자면 나는 머글을 택하겠다.


  마법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면 본인이 머글이어야 한다고 해도 괜찮다. 마법 세계의 존재만으로 변수가 생기고, 조금은 현생이 다채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더해서 말이다. 물론 지팡이 하나 가지고 휘두를 수 있다면 바로 부동산 정책부터 해결하겠습니다! 하고 공략까지 걸 수 있다. 그럼에도 머글로 미궁 속에서 '거 참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네'를 읊조리며 무지하게 산다 하더라도 마법 세계의 희망을 간직할 수 있다면 괜찮지 싶다. 사실 누군가 보면 뭔 마법 세계냐고 할 수 있지만, 누군가 평행 우주를 꿈꿀 때 본인은 마법 세계를 꿈꾸는 것 뿐이다.(이과생분들 화내지마세요)


  그 세계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존재만으로 행복한 기분.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조금은 당당하게 해리포터 덕후임을 공표한다. 본인을 해리포터 덕후로 임명하며,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해리포터 정주행의 임무를 내립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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