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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Nov 07. 2021

토요일 아침의 풍경 / 우드수탁

아름다움

 토요일 낮 11시,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은 비몽사몽 상태로 커피를 사러 나왔다. 오늘 하루종일 뒹굴거리며 오랜만에 책도 보고 영화도 봐야지 라는 즐거운 계획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렇게 스마트폰에서 잠깐 눈을 떼 하늘과 동네 풍경을 바라보는데 우리 동네가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싶었다. 너무도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 날 따라 눈에 열심히 담아내고 싶다는 기분에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인스타그램에 수만개의 좋아요를 받는 특별히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다. 그저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며 하늘은 깨끗한 푸른 파란색이었고, 미세먼지나 안개로 얼룩덜룩함도 없었다. 티없이 맑은 푸른색이 부정적인 생각까지 소독해버리는 듯 했다. 그림자 효과를 넣었는 지 선이 없어도 구름과 하늘이 경계선이 분명했다. 그 밑으로는 양 옆에 빌라 베란다로 고개를 내민 꽃이며 나무가 초록빛, 빨간빛을 내뿜으며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빌라에 사는 누군가의 취미 생활일 뿐이겠지만 마치 관광지처럼 아기자기하고 선명한 컬러를 뿜어냈다.  


  ‘이 동네에 산지 6개월이 넘었는데 왜 한 번도 이런 풍경을 보지 못했지? 진짜 이 아름다움을 놓치면서 살고 있었다니..’ 개복치마냥 가슴이 벅차올랐다. ‘너무 아름답다..난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되뇌었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이런 아름다움을 다 지나쳐 왔던 거야. 앞으로 길을 걸을 땐 풍경 감상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하자.’ 라고 마음을 먹을 정도였다. (물론 지켜지진 않았다) 


  토요일 오전에 집 밖의 하늘을 보는 게 오랜만이긴 했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시간을 흘려보내며 쉽게 집 밖으로 발을 떼지 않았다. 주말의 아침이란 응당 침대에 누워있어야 한다며, 반(反)평일, 반(反)출근의 의미를 담은 본인의 소소한 낙이기도 했다. 소소한 낙을 깨고 나선 오전의 하늘은 유달리 푸르고 따뜻한 색을 뿜어내고 있었고, 마치 스페인 골목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전혀 특별할 것도 아름다울 것도 없는 풍경일거다. ‘왜 이리 오바야’ 라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아름다운 무언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스치는 장면이며 아마 이 동네를 떠나도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씬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사람들이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아내고, 서울의 하늘보다 여행지의 하늘에 더 눈을 맞추는 것은 아마 마음의 여유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그 토요일 오전의 하늘을 월요일에 마주했다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왔을거다. 분명 신세 한탄만 중얼거리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아름다운 무언가를 본 것이 언제인지 떠올려본다. 요 몇일의 기억이 뿌옇게 지나가고 특별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져보자고 다짐한다. 아름다운 무언가는 지나가버리면 되돌릴 수 없을테니까. 동네의 아름다움을 마주한 토요일의 아침처럼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리고 읽게 될 누군가도 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날이 많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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