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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Oct 13. 2021

결국은 울게 될지라도 / 우드수탁

내 애장품을 소개합니다

아빠는 말씀하셨다. 너무 작은 것들까지 사랑하진 말라고.
작은 것들은 하도 많아서 네가 사랑한 그 많은 것들이 언젠간 모두 널 울게 할테니까.
나는 나쁜 아이였나 보다.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나는 빨간 꼬리가 예쁜 플라밍고 구피를 사랑했고 비 오는 날 무작정 날 따라왔던 하얀 강아지를 사랑했고, 분홍색 끈이 예뻤던 내 여름 샌들을 사랑했으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갈색 긴 머리 인형을 사랑했었고, 내 머리를 쓱쓱 문질러대던 아빠의 커다란 손을 사랑했었다.
그래서 구피가 죽었을 때,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샌들이 낡아 버려야 했을 때,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 때마다 난 울어야 했다.
아빠 말씀이 옳았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간 날 울게 만든다.

- 신지상 지오/만화 베리베리다이스키


  언젠가 인터넷에서 이 글을 읽었을 때 목구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아끼고 사랑했으나 어느새 잃어버리고 사라져 간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초등학교 앞 슬러쉬, 생명이있는 것마냥 소중했던 물컹이(문방구 장난감), 아기 달팽이들, 게임 필통들. 하지만 그것들은 볼에 눈물 자국을 옅게 남긴 채 사라져갔다. 마음을 준다, 사랑한다는 무거움을 몰랐던 어릴 적엔 쉽게 사랑하고 금방 울어버리곤 했다. 물론 또다시 새로 사랑할 것을 찾아 마음을 쏟아냈지만 회복의 속도와는 상관없이 상처는 상처였다. '그래, 내가 사랑한 것들은 날 울게해. 지금 행복하게 하더라도 언젠간 분명 울게할꺼야.'


  울고 싶지 않았던 나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쉽게 정을 주지 않고, 무심한 마음을 유지하려 부단히 애쓴다. 그렇게 마음의 성벽에 벽돌을 하나씩 쌓아가며 단단하지만 차가운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애장품'이란 주제를 보았을 때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애장품이라 함은 합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는 무용하더라도 마음을 다해 아끼고 덕질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하는데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다. 심지어 올해 초 이사를 할 때 떠올려보니 언젠가 유용할 것 같아 챙긴 물건은 있어도 쓸모없지만 아껴서 챙긴 물건은 없었다. 일주일동안 매일 밤 대화를 나누던 인형도 잘 때 공간을 차지한다는 이유로 쓰레기통으로 쉽게 향했으니까.


  내가 꾸준히 들여다보고 신경쓰는 것은 오로지 직접적인 기쁨을 주는 '사람' 정도였다. 그 외에 물건이든 콘텐츠든 오로지 소비를 위해 존재했다. 잠깐씩 머릿속 가상연애를 즐기던 연예인도 있었고, 모자나 신발도 의미없이 구매하긴 하지만 도저히 꾸준히 좋아하긴 쉽지 않았다. 항상 너무 아끼고 좋아하면 상처를 받게 될 거란 걸 알고 무의식적으로 거리감을 두려고 애썼다. 연예인도 결국 나라는 존재를 모르고 있고, 모자나 신발도 언젠간 닳아 쓸 수 없게 되버리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착한 아이'라기 보다는 애장품 하나 없는 '겁쟁이'였다.


  요즘은 가성비보단 가심비가 주머니를 열게 하는 시대다. 유용함보단 애정에 높은 효용을 부여하는 지금은 애정을 주는 것도 능력이 아닐까 싶다. 무언가에 시간을 들여 관심을 쏟고 아끼고자 하는 사람에겐 꾸준함과 열정이 있다. 끝내 사라져 코가 시큰해지더라도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넓은 포용력까지. 애장품 하나 없는 지금은 마음 아픈 비가 내릴 일은 없지만 매일 같이 황량한 사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폭우가 쏟아져 무언가 떠내려가더라도 싹도 피고 꽃도 피우는 사계절이 있는 삶이 더 풍성하지 않을까. 오로지 감성과 소비로 도배된 내 방에도 그런 사계절이 찾아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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