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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30. 2021

잊혀진 그 무언가에 대하여 / 우드수탁

요즘 무슨 생각 하세요?

  상념(想念)의 소용돌이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주로 자전거를 타고 직선 길을 달릴 때, 익숙하고 고민이 필요 없는 길 위에서 유난히 낯선 생각들을 마주한다. 사람들은 다들 어디서 와서 어디로 나가는 것인지 라는 심플한 의문에서부터 마주 오고 가는 사람들 중 한 명쯤은 한 번 이상 마주치지 않았을까? 혹은 중학교 때 친절했던 A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과거의 행동을 약간 비튼다면 지금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언제부턴가 나는 동굴을 즐기게 된 것일까? 과연 자발적 동굴인 것일까 아니면 그저 현실 도피형 벽보기인 것일까?

 

  정답은 당연히 없거니와 사실 고민하는 것 자체도 하등 의미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평소에 항상 이런 생각들을 안고 사는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생각을 멈춘 채 사는 시간들이 더 많을거다. 그럼에도 생각? 또는 잡념?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도 있는 게 틀림없다. 기어코 어느 순간 마치 댐을 허물 듯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나와 '내가 원래 이렇게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나?' 싶게 만든다. 대게 사람들이 생각이 꼬리를 문다고 하면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지지만 본인의 소용돌이의 대부분은 전혀 연관이 없다. 그저 파도 타는 배처럼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른 채 휩쓸리고 만다. 그렇다고 어느 종점을 두고 항해하는 배와도 다른 것이 전혀 종점은 없고 그저 이리저리 휘둘리다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멈추고 지내는 동안 머리에 방이 있다면, 아마 방보다는 창고에 가깝겠지, 그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뜯지 않은 택배 상자들을 한번에 언박싱하는 거다. 놓치고 지나갔던 순간 혹은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기억에 담아두지 못했던 어떤 시간들을 마구 풀어헤치는 거다. 물론 그 택배 속에서 가끔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발견할 수도 있다.(물론 선물인 줄 알았더니 결국 포장만 화려한 종이포장인 것이 더 많다) 그리고 그 선물은 오롯이 나를 위한 선물이 된다. 선물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거나 보기 좋은 칭찬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방 한 구석에 장식해 놓은 조명같이 나의 마음 속 어딘가를 밝혀 준다. 그런 선물을 발견하면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 종이에 잊지 않고 남겨두려 노력한다. 본인을 향한 따끔한 충고 또는 놓치고 지나갔던 감사함, 혹은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될 수도 있다.


  잊혀져 있던 택배들을 하나씩 뜯고 나면 왜인지 무거웠던 머리가 한결 가벼워진다. 조금은 우울하게 잠겨버리는 생각들도 수면위로 떠올라 일광욕을 즐길 준비를 하는 기분이다. 생각 없이 사는 것을 경계하라 라는 말이 이쯤 되면 꽤나 명확하게 와 닿는다. 생각없이 산다는 것은 어쩌면 잊혀진 그 무언가를 살펴볼 마음의 여유 하나 없는 삶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럼 당연히 경계해야 마땅하다. 여유가 없는 삶이란 빛이 들지 않는 지하와 다르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은 여유를, 지하에 빛을 가져다 주고 그 시간은 쌓여 루프탑까지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도 내가 가끔은 루프탑에서 혼자 햇빛을 맞는지 몰라도 상관없다. 쉽게 보여지는 외부의 모습만을 보고 비하했던 누군가는 이미 마음 속에 피라미드를 건설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잊혀진 무언가 혹은 잊혀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그 무언가를 다시 들여다 볼 시간은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아도 상관없다. 당장 드러내지 않더라도 그 시간들은 언젠가 강하고 단단해져 도저히 눈치 채지 않을 수 없는 무언가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꽤 방 한 켠 잊혀진 무언가가 쌓여있는 듯하다. 날씨가 조금 풀리면 다시 쌓여있는 것들을 정리할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이번엔 또 어떤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지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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