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리 Sep 01. 2021

키보드를 바꿨다 / 우드수탁

이야기가 시작되는 소리

  "아 A씨 옆자리야? 그 사람 타자 소리 엄청 시끄러운데"


  최근 자리 이동을 하게 된 K에게 한 동료가 주의를 건냈다. 저도 시끄러운데요 하며 웃으며 넘긴 K는 오히려 동료가 귀가 밝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사실 사무실의 바쁜 타자 소리는 ASMR로 들릴 정도로 익숙한 생활 소음이었고 그 중에서도 K는 키보드 소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요즘 무소음 키보드가 대세라며 주변 동료가 구매하는 것을 보았지만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기분 좋게 들리는 키보드 소리가 일의 효율을 높인다고 생각했다.


  '파박파박' '틱틱' '탁탁'. A씨의 키보드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대해 처음 들은 이야기가 시끄러운 타자 소리라 그런지 괜히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는데 확실히 귀에 꽂히는 소리임에는 틀림없었다. 보통의 키보드 소리가 전기 자동차 엔진이라면, A씨는 가끔 저녁 번화가에서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시끄러운 엔진이었다. 사실 업무 중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경우가 많아 주변의 소리에 둔했는데도 A씨의 소리만은 달랐다. 키보드 소음이 귀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A씨의 전화 소리, 말 소리, 마우스 소리, 물 마시는 소리마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혀 다른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과정이며 통화 습관은 어떤지까지 파악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한 번 업무 통화를 하기 시작하면 30분은 넘게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고, 항상 난처한 상황에 놓여있는 듯했다. "네..그건 좀 어려운데...그럼 이 때까지 드려도 될까요?" 꽤 안쓰러운 소리의 끝에는 시끄럽고 유난스러운 키보드 소리가 따라왔다. '틱틱' '탁탁' '달칵' K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나는 소리에 신경 써본 적이 없어서인지 그 모든 소음이 매우 거슬리기 시작했다. 노래를 듣기 위해 꽂았던 이어폰은 이제 오로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쓰였다.


  K는 그렇게 알게 모르게 A씨를 의식하기 시작했고, 소리와 멀어지려 하는 만큼 더 예민해졌다. 이어폰의 음량은 높아졌고, 표정은 어두워졌다. 일이 순조롭게 되지 않을 때는 A씨를 탓했다. '아 A씨가 시끄러워서 일의 흐름이 끊겼어'. A씨가 일이 잘되는 듯할 때는 '누구 땜에 나는 시끄러워서 일도 안 잡히는구만' 하면서 혀를 찼고, A씨의 일이 힘들어 보일 때는 '어휴 저러니 키보드가 남아나질 않지' 하며 탓했다. 주변 사람과의 스몰 토크도 큰 음악 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았고, K씨는 마치 자신과 A씨의 키보드만이 남겨진 성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렇게 K는 키보드 소리에 매몰되어 갔다. 엎친 데 덮친 격 힘든 업무가 늘었고 나날이 날카로워졌다. K는 키보드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괜히 또 언제 들리려나 전전긍긍했고, 들리면 역시나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이전의 밝고 긍정적이던 모습에서 멀어졌고, 목소리는 커지고, 타자 소리는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는 오히려 집중을 방해해 야근도 잦아져 항상 피곤에 절어 있는 모습으로 출근했다. 결국 참다 못해 '키보드 소리가 너무 시끄러운 사람들 있는데 진짜 이건 사무실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 무슨 타자기 쓰십니까? 키보드가 시끄러운 사람은 통화도 시끄럽고 옆 사람 배려도 안하는 그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키보드에 뭐를 깔던지 아니면 조용히 치시던지 좀 해주세요. 키보드 소리 때문에 일이 안돼요. ' 라며 회사 익명 게시판에 흥분 가득한 글을 올릴 때까지 말이다.


  그 글은 회사 안에서 꽤나 화제가 되었다. 팀 점심 식사에 그 얘기가 흘러 나왔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반응은 사뭇 달랐다. "게시판에 올라온 그 글 봤어요?" "그러게, 키보드 시끄러운 사람들이 있긴 하지" "근데 뭐 자기 소리는 잘 모르지 뭐.." 라며 팀원들이 한 마디씩 덧붙이며 왜인지 K를 흘끔거렸다. 처음엔 크게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 분위기는 흘러 동기들의 단톡방에도 나타났고, 친한 동기가 넌지시 개인 메신저를 보내왔다.

"K, 요새 뭐 힘든 일 있어?" "뭐 회사야 항상 힘들지..왜?" "아니, 요새 게시판에 올라온 글 봤어? 그게 K라는 얘기가 나오더라고...말할까 말까 하다가 얘기해주는게 나을 것 같아서..."


  K는 벙쪘다. 그 글은 자신이 쓴 글이고, 그 화살은 분명 A를 향하고 겨눴는데 어느샌가 그 화살이 돌아 돌아 K를 향하고 있었다. 아닌데..아닌데...라며 되뇌었지만 결국 남들에게는 자신도 그리 다르지 않았던건가. 그 날 K는 어떤 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A의 키보드 소리보다 본인의 소리가 더 거슬리고 K에 대해 떠드는 듯한 타자 소리에 묻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킥킥거림, 대화들이 하루종일 웅웅거렸고,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쩌면 흘러가는 시시껄렁한 가십일지 몰랐지만 K에게는 A씨를 흘겨보던 시간, 탓하고 원망하던 마음들이 그리 가볍지 않았기에 그 화살이 자신에게 향하자 너무 당혹스러웠다. 결국 시작은 A의 조금은 요란스러운 타자 소리였는지 몰라도 그 모든 소리를 만들어낸 것은 K 본인이라는 생각에 종착했다. K의 생각, K의 의식이 가상의 증폭기가 되었고, 그 소음은 또 다른 실재하는 소음을 만들어냈다.


  K는 다음 날 바로 인터넷에서 무소음 키보드를 주문하고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슬그머니 지웠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나니 사무실은 조용했다. K는 몰래 A씨의 책상에 디저트 선물 하나를 올려두었다. 게시판에 쓴 글은 똥 묻은 개의 글이 되어서야 A씨를 원망하던 시간들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키보드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침묵이 내려 앉았고 K는 사무실이 이렇게 조용했나라고 느끼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누군가 K를 지목하지 않았다면 오늘도 그는 옆 자리 A씨를 흘끔거리며 한숨을 뱉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키보드는 무소음으로 변했고, K의 말소리도 유난히 조용해졌다. K는 이제 누군가의 A씨였고, A씨가 K였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게시판의 글이 모두의 기억 속에 희미해지겠지만, K는 항상 자리에 앉아 키보드 소리가 꾸짖는 소리가 되어 마치 혼나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앉아있을 것만 같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출근을 한다 / 우드수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