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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Dec 12. 2021

웹소설의 즐거움 / 철수

'덕'업상권

  웹소설, 한 때는 판타지 혹은 무협으로 불렸고 조금 고상하게 부르면 장르 소설이라고 불리던 그 소설들이 요즘 잘 나간다. 내가 봤던 작품들이 웹툰으로도 나오고 영화화도 된다니 팬으로서 감개가 무량하다. 메이저가 된 인디밴드를 떠나보내는 심정이다.


  내 소설 사랑은 아파트 상가 지하에서 시작되었다. 고작 2동 밖에 없는 우리 아파트엔 뜬금없게 5층에 지하까지 있는 꽤 큰 상가가 있었다. 거기 지하엔 진짜 장사가 될까 싶은 위치에 심지어 간판도 없는 만화방이 하나 있었다. 디비디도 비디오도 없고 신간도 없는 대여점이었는데 그래서 작았는 데도 책은 좀 있었다. 대여점은 책도 낡고 서랍도 낡고 컴퓨터는 도스였다. 다른 상가 대여점과 달리 외상이 되고 무엇보다 가깝다는게 장점이었다. 낡은 만큼이나 이제는 절판된 작품들도 많아서 때때로 좋았다. 이 대여점에서 탐그루, SKT, 묵향, 룬의 아이들, 드래곤 라자, 눈물을 마시는 새, 세월의 돌 등등 수도 없는 작품을 빌려보았다.


  재미와 불안이 내 소설읽기의 동기다. 재미야 당연하니 불안을 설명해보겠다. 예를들면 오늘 나는 코딩 과제를 해야하는데 글을 쓰고 있다. 불안한데 그만큼 도피하고 싶은 욕망도 커지기 때문이다. 무언가 답답한 상황이 되면 소설속 세상으로 도망간다. 특히 그 중에서 멸망물이 좋은데 모든 게 다 박살 나서 지긋지긋 한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진 세상이 때로 개운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에도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소설을 찾았다. 그때는 수능을 잘 칠지도 모르겠고 그리고 나서도 잘 해낼지 모르겠으며 그래서 미래가 전부 불안했으므로 이고깽을 읽으면서 위안을 얻었다. 당시 유행하던 플롯인 이고깽은 현실에서 찐따인 주인공이 차원 이동을 해서 최고가 된다는 내용으로 많은 찐따 (남)학생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 때는 주독자인 남중고생에게 여러 종류의 대리 만족을 주는 소설들이 많았다. 나는 해소를 느끼면서도 읽는 걸 부끄러워 했는데 대개는 작품의 수준이 낮아 읽으면서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 유행하는 재벌물이나 직장인 환생물처럼 굉장히 현실성이 떨어지는 인물 묘사와 전개가 난무했었다.


  그 때 내게 소설을 계속 읽을 동기를 준 학창 시절의 불안들은 이제 사라졌다. 그러나 새로운 불안아 끊임없이 찾아오고 나는 오늘도 강철의 전사의 세계로 도망갔다 왔다. 도망치는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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