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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Nov 09. 2021

심미안에 대한 소고 : 에세이 / 철수

아름다움

  사람을 만나면 먼저 어디를 보세요? 저는 주로 얼굴을 쳐다 봐요. 눈도 보고, 코도 보고, 입도 보고, 그러면 내 뇌안의 회로가 좋든 싫든 작동해서 미추를 판별하더라구요. 어느 날엔가 그렇게 또 무지성으로 심미안을 작동 시키던 어느날에 - 매 순간 자동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어요.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게 왜 이래야만 할까?- 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왜 카페는 안에서 마실 때와 테이크아웃일 때 가격이 같을까?- 하고 생각이 들 때 처럼요. 실은 고민할 게 있나 싶기도 해요. 이쁜 얼굴은 이쁜 얼굴이고 아닌 건 아니다. 간단하게 생각할 수도 있죠. 감정의 이유를 찾아야 하나? 라고도 생각할 수 있구요.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목이긴 사람이 미인인 부족이 있다는데! 우리의 미의식도 알고보면 꽤 많은 부분이 학습의 소산이 아닐까요? 제게 심미안은 출산과 동시에 출시되어 업데이트 되는 앱 같아 보여요.


  혹시나 누군가를 좋아했던 경험이 있으시면 겪어 보셨을 수도 있어요. 아름답게 보이던 얼굴이 그렇지 않아 보이는 순간요. 그 경험은 처음에 좋아해서 빠져들게 된 그 순간만큼이나 마법 같았어요.그 얼굴은 거기 그대로 있는데 제 마음만 움직이는 거잖아요. 마법은 마법인데 흑마법이라 기분은 안 좋았어요. 사진만 봐도 감탄하던 대상이 마음만 바뀌었는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진다니요. 이렇게 보면 감정이 심미안보다 강하거나 감정이 심미안도 변화시키나 봐요. 아무튼 둘 중 하나에요.


  이 심미안이라는 건 사람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들어요.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 이런 말을 듣고 공감을 했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런데 아름다움이 행복을 약속한다면 아름다움을 구별하게 된 마음은, 불행과도 영원히 계약하게 된다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못했어요. 아름다움을 인식하면 그렇지 않음도 인식하게 되어버리잖아요. 깨끗함을 인식하면 더러움이 인식되고 뛰어남을 인식하면 열등함이 인식되듯이 하나만을 인식할 수는 없어요. 무엇인가 아름답다고 딱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는 아름답지 않은 나머지들을 나도 몰래 만들어 버리는 거죠.


  가끔은 외모 인식 스위치를 끄고 싶은 순간들이 있어요. 특히 일할 때 그래요. 동료의 미추에 영향을 받을 때엔 자괴감이 들어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대머리이신 분에게 일을 잘할거라는 편견이 있어요. 차라리 외모와 뭐라도 상관있는 직무면 죄책감이 좀 덜했을까요? 이런 감정이 악랄한 점은 본능적이고 반사적으로 일어난다는 거에요. 잠깐 멈춰! 하고 말해봐도 소용이 없어요. 인상이 인식보다 빠르게 오니까요. 그렇지만 그 아름다움이 주는 강렬한 감정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섭섭하기도 해요. 살면서 느끼는 감정 중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 중 하나니까요. 아! 정말 모르겠어요. 출근할 때만 키고 퇴근할 때는 켤 수 있을까요? 저는 뷰티 인사이드의 한효주 만추의 탕웨이를 보면서 감탄했던 순간까지 없애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정말 심미안을 끈다고 해도, 저는 다른 즐거움의 노예일 거에요. 달콤한 디저트, 완벽한 대화, 보람찬 일에도 중독이 있으니까요. 외모에서 해방되도 우리는 결국 즐거움을 쫓아다니는 강아지 신세인 거죠. 그렇다고 그런 상황이 사람에 대한 편견의 핑계가 되어서는 안될 거에요.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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