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가 된다면
29살 처음으로 로또를 샀다. 엄마가 좋은 꿈을 꿨다며 로또를 사러 가는 길에 얼떨결에 한 장 사게 된 것이다. 나에게 로또는 똥이든 돼지든 일명 돈 나오는 꿈을 꿔야 살 명분이 생기는 아이템이었다. 한 번도 꿈에서 뭔가 터지고 쏟아지는 돈 되는 상황을 보지 못했고 원체 경품 운도 없는 편이라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은 왠지 엄마와 함께 로또를 사고 싶었다. 첫 로또는 엄마와 함께 하는 편이 의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 몫했다.
스스로를 꽤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게 우습게도 긍정 회로가 돌아가고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낙첨 경험이 없는 마음은 마치 한 번도 넘어진 적 없는 아이처럼 당장이라도 농협에 달려갈 것 같았다. 당첨금의 크기도 모른 채 한 30억쯤 되지 않을까 가늠하고 엄마와 어떻게 나눌지 상의에 들어갔다. “우선 아빠한테 관종끼를 펼칠 수 있게 테슬라를 하나 사주고..” “엄마는 현금 줘, 현금” “현금? 아 알았어! 얼마 줄까? 근데 엄마되면 나 서울에 집 한 채 사줘” ”아 당연하지~ 서울에 집이 뭐야 다 사줄께” 꽤 계획적인 엄마도 로또 앞에서는 충동적으로 바뀌어 무작정 사들였, 아니 상상을 했다.
상상 속 당첨금은 확실한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당첨 확률과는 별개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당장 손에 닿을 것 같았다. 노동의 대가로 차곡차곡 피땀눈물 흘려 모은 돈은 아니지만 결국 돈은 돈이고, 돈만큼 빠르고 확실하게 기쁨을 가져다 주는 건 쉽지 않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쓸 돈을 생각하니 왠지 벅차오르는 기분마저 느꼈다.(평소엔 그렇게 큰 선물을 하기 어려우니까 말이다). 미리 말하자면 결과는 물론 낙첨이었다. 하지만 로또 결과를 보기 전 그 꽤 의미 없는 상상의 시간은 오랜만에 과정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매 주 로또를 사는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로또가 되지 않을 거라는 건 알지만 혹시 모를 설렘만으로도 꽤 행복해”. 이제서야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엔 실제로 당첨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기분에 사고 낙첨의 결과를 얻는다. ‘낙첨’이라는 두 글자에 좌절할 수도 있지만, 그건 잠깐이지 않을까. 대부분 결과를 기다리는 설렘과 기분 좋은 상상으로 일주일을 보낸다. 쉽게 얻을 수 없는 큰 숫자의 당첨금은 20년 장기 목표로 비워둔 네모 박스를 바로 체크하게 해줄 수 있고 평생 걱정을 한 방에 해결해줄지도 모른다. 실제 현실이 아니라도 잠깐이라도 굴레나 걱정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현생에 치여 살다 보면 상상의 세계와 꽤 멀어진다. 즐거운 상상도 결국 금새 따라오는 현실 자각 타임에 쫓겨 사라진다. 하지만 로또는 우리를 즐거운 상상으로 끌어주는 수단이 되어 주는 듯 하다. 20년 후에야 볼 수 있는 돈이 다가오는 토요일 저녁에 만질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 당장 회사를 때려 치우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 원하던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응원처럼 말이다. 물론 만지지 못한다고 해도 실망하지는 말자. 기분 좋은 꿈처럼 ‘아 조금 더 오래 꿀걸’하고 아쉬워하고 말 일이다. 토요일 저녁에 누군가는 기분 좋은 꿈에서 깨버리겠지만 로또 당첨 꿈은 아주 가끔 현실이 되기도 하니까 자면서 꾸는 꿈보다는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