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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15. 2020

음식에 잠식되는 순간 / 우드수탁

내가 무서워하는 것

  어쩌면 이번 글이 여태까지 쓴 글 중 가장 내밀하지 않을까 싶다. 인생에서 가장 숨기고 싶은 시간이자 무서운 습관이 있다. 나는 가끔 맛을 느끼지 못한 채 입에 음식을 우겨넣으며 시간을 보낸다. 바로 폭식이다. 내가 가진 여러 단면 중 가장 무서운 단면이다.


  폭식이 나타나는 순간은 항상 스트레스와 함께 온다. 일이 유난히 힘들었던 날이나 뜻대로 풀리지 않는 시간들에 식욕이 급격하게 주체할 수 없어진다. 힘든 시간들로 허해진 마음을 음식으로 채워버리게 된다. 혼자서 배달의민족을 켜서 약 4인분 양을 시킨다. 먹다 보면 어느새 맛을 느끼는 순간은 지나고 오롯이 입에 먹을 걸 우겨 넣고 있다. 곧 몸이 ‘더 이상은 그만’이라고 외치는 순간이 오는데 항상 자괴감과 함께다. 왜 정량을 먹지 못하지, 매일 다이어트 해야한다고 하면서 왜 지키지 못하지,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 왜 다른 사람처럼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는 걸까 등 멘탈을 무너뜨리는 생각들이 몰려온다. 위에 모든 피가 쏠려 어느새 사고는 약해지고 멍해진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이기에 절대 남들과 함께 하는 식사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가끔은 어색한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중에도 ‘그냥 집가서 혼자 이것저것 시켜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한창 심했던 시기에는 폭식을 하면서 눈물이 난 적이 있다. 이 굴레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는데 난 몸과 마음이 전혀 건강하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는 행동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어 두 손 두 발 놓은 채 하염없이 쓰러져있게 되는 느낌이다.


  폭식을 고치기 위해 다른 소비도 해보고, 지칠 때까지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기도 하고, 운동을 하러 가서 밤늦게 돌아오기도 해보았지만, 어느 날 배달음식을 먹다 지쳐 쓰려져있는 나를 곧 발견했다. 결국은 내 의지의 문제다. 문제임을 인지하는 단계는 지났다. 내일부터라고, 치팅데이라고 합리화하는 나를 넘어서는 단계에 와있다.


  음식을 사랑하지만, 음식에 매몰되고 싶지는 않다. 음식을 사랑하는 만큼 건강하게 즐기고 싶다. 아직은 폭식에 대한 두려움에 혼자 집에 가는 길이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지만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폭식에 지쳐 쓰러져있는 나를 걱정하고 일으켜 세워주는 것은 내 주변의 얼마든지 의지하라고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들이다. 무서운 영화를 볼 때 옆에서 내 귀와 눈을 가려주면 순간 마음이 놓이는 것처럼 폭식의 두려움에 내 눈과 귀를 가려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여전히 두렵고 무섭지만, 나는 언젠가 극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건강한 식사를 위하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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