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이었나. 웬 음료 광고에서 왕년의 터프가이 김보성 씨를 본 적이 있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김보성 씨가 아메으리카노 대신 식혜를 마시라며 의리(우리)집 의리 있는 음료를 온몸으로 외치는 광고. 자신을 한참이나 내려놓은 것 같은 그 배우 덕분에 한 동안 ‘으리’ 어쩌고 하는 말들이 유행이었다. 그때 왜 쓴웃음이 났을까. 좋았던 시절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쓴 맛. 한 여름에도 가죽점퍼나 터질 것 같은 검은 양복을 입을 것 같은 사내가 그토록 재미난 광고에 나오다니. 아재 개그니, 꼰대니 하는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었던 것도 같다. 사람들은 불편한 뭔가가 무대의 뒤편으로 사라져 갈 때 귀여워하거나 우스워한다. 김보성 씨는 스스로 우스워지는 쪽을 ‘택’했으니 다행히도 귀여운 누군가로 남게 된 것 같다.
비슷한 쓴웃음이 아버지의 입가에 떠오른 적이 있다. 온 가족이 적당히 취했던 그 날 아버지는 불콰해진 눈을 내리깔고 담담하게, 그러나 분명히 말했다. 나와 형이 어렸던 그때의 아버지 당신은 너무도 어렵고 엄했던 것 같다고, 잘못 하나하나에 매를 들지 않았더라도 이만큼 괜찮은 청년들이 되지 않았겠느냐고,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봐 늘 무서웠다고. 아직 젊고 황소처럼 성이 났던 시절을 괴로워하는 눈. 그 시절을 조소하는 유난히 쓴웃음. 기실 나와 형은 여느 집 바르고 착한 자식들처럼 되기엔 애진작에 텄으니 지금 생각해도 아버지는 혼이 날 상황에서만 매를 드셨다. 그게 수 십년의 멍에로 남았었다니.
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일이 예순 살 사내에게도 생기는구나.
젊은 날을 헤집고 헤집어 그건 실수가 아니라 잘못이었다고 고백하는 일이란,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무대에서 내려올 때라는 걸, 호시절의 뒤안길로 저물어가야 한다는 걸 애써 받아들이는 일일 게다. 다행히 아버지 역시 우스워지기보다는 귀여워지는 쪽이었다. 어린 날의 아버지는 사라지고, 무대에서 내려온 아버지의 자리엔 서른 살쯤 더 산 개구진 친구가, 꽤나 아는 게 많은 멋진 동네형이 남게 되었다. 아버지의 마음도 조금은 편해졌을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수많은 일들의 대부분은 지금도 그때도 틀린 것들이다. 불편함과 어려움을 덕지덕지 발라 쌓은 무대가 조명이 들지 않는 뒤편을 가리고 있었을 뿐. 다행히 시절이 하 수상하고 살아내기가 영화만큼이나 스펙터클해지면 관객들의 수준도 자연히 높아지는 법이다. 영리한 관객들이 그 막무가내의 부조리극 같은 무대로 모여드는 일이란 좀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낡고 조야한 무대 위의 돼먹지 못한 삽질이 귀여울 리가. 평생을 자기 세상에서 주연으로만 살아온 꼰대라는 이름의 배우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쓴웃음이 아니라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로.
갑질, 아재, 꼰대라는 말들로 당신들이 사라져야 할 길에 온 마음을 담은 주단이 깔려있던 때가 있던가. 스스로 내려오지 않으면 등 떠밀려 내려오게 된다. 기꺼이 우스워지기를 '택'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우스워질 뿐이다. 우리 때는 그랬어를 밥 먹듯이 뇌까리는 당신들의 마음에도 한줄기 평안이 깃들기를. 아등바등 붙잡고 있던 호시절을 못내 내던진 당신들을 귀여워할 수많은, 아직은 젊디 젊은 관객들이 여기에 있다.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리다 아니, 그러지 않다가는 진짜 한 번 맞는다 당신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