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을 든 성배를 기꺼이 받아 든 그들
2016년 9월 현재 KBO 리그 10개 구단 감독 중 3년 이상 팀을 이끌고 있는 감독은 4명뿐이다.
매년 시즌이 끝나는 시기인 9월에서 10월이 되면 성적이 좋지 않았던 팀의 감독 교체 혹은 자진 사퇴 기사가 포털사이트 기사에 올라오기 시작한다.
매해 반복되는 일이다 보니 야구를 즐기는 팬 입장에서도 당연한 일처럼 여길 정도다. 어느 순간 국민 스포츠의 위치까지 격상된 프로야구이지만 야구 구단 자체는 대기업의 홍보 대상 그 이상은 아니다. 구단의 이미지 마케팅을 위해 야구단이 운영되다 보니 장기적으로 선수를 키우거나 내부적으로 강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시간은 새로 팀을 맡은 감독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어느 팀이든 성적을 내기 위해서 긴 안목으로 팀을 운영하기에는 새로 팀을 맡은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부족하다. 새로 감독을 맡은 팀이 올해 10개 팀 중에서 10위를 했더라도 내년 목표는 우승이거나 5위안에 드는 것이다.
수능으로 바뀐 지금의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수능 이전에 학력고사로 대학에 입학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학력고사 세대들 중에는 고2 때까지 성적이 바닥을 치다가도 고3 때 마음잡고 공부해서 상위권 대학에 간 선배들이 종종 있었다. 수능보다는 암기에 치중한 시험이었기에 짧은 시간 안에 성적을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시험은 과거보다는 복잡해져서 단기간에 성적을 올리기가 예전보다는 어려워졌다. (그 이유 말고도 사회적, 경제적 여건 등이 더 커보이기는 하지만)
학력고사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험의 시대가 온 것처럼 현재는 과거보다 고려해야 할 요인들이 많아졌고, 과거처럼 단순 무식하게 노력해도 단기간에 성적 혹은 실적을 올리기가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혹은 20년 전의 성공담을 예로 들어 프로야구 감독들을 조여 오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야구를 직업으로 한 사람들에게 프로야구 감독이라는 자리는 평생에 한 번 맡아보기 힘든 자리이고 그 자리를 3년 이상 유지하는 건 더더욱 힘든 일이다.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팀을 운영해보고 싶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감독이라는 자리를 피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감독은 팀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팀을 운영하는 구단이나 프런트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기존의 터줏대감같은 선수들과의 관계도 신경써야 한다.
감독이 을이 되는 모든 상황을 알고 있기에 구단에서는 자신의 구미에 맞는 감독을 앉혔다가 성적 부진의 이유로 경질한다. 결국 신임 감독이 되더라도 성적을 내기 위해 구단, 선수, 팬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자신의 소신과는 다르게 팀을 운영하게 된다.
기존의 팀 운영방식과 다른 경우가 2012년에 나타났다. 2012년 넥센 히어로즈는 약 4년간 팀을 이끌었던 김시진 감독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염경엽 감독을 차기 감독으로 선임한다. 다른 팀들은 모두 이름값있는 감독들을 찾고 있을 때 넥센은 그들과 정반대의 생각을 하게 된다.
감독이 원하는 색깔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최고의 팀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 그 노력의 결과로 2013년부터 넥센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매해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해내고 이름값에 상관없이 실력만으로 기용하는 염 감독의 운영방식이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2016년 9월 현재도 넥센 히어로즈는 전체 리그에서 3위를 차지해서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된 상황이다. 시즌 초만 해도 많은 전문가들이 박병호, 강정호 등의 이탈과 주축 투수들의 부상으로 넥센의 올 시즌을 어렵게 봤지만 염 감독은 자신의 색깔을 더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러한 염 감독의 팀 운영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넥센 구단의 전폭적인 지지와 믿음이었다.
강한 팀을 만드는 것은 조바심이 아닌 기다림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이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팀을 운영할 때 어떤 시너지가 발생하는지 우리는 지금도 넥센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올해도 시즌이 끝나면 성적에 책임을 지고 팀을 떠나는 감독이 생길 것이다. 약 15년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이끌었던 토니 라 루사 감독까지는 아니더라도 10년 이상 팀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는 구단이 나타나기엔 우리 야구의 역사가 아직 짧은 것일까? 긴 호흡을 가지고 기초체력이 단단한 팀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기다려본다.
덧붙이며.
올해 한화를 이끌고 있는 김성근 감독의 운영은 오늘의 글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당장의 성적에 급급하여 선수를 소모품처럼 여기는 감독이라면 시간이 주어져도 변하는 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올해 더 이상 한화 선수들의 부상 소식을 듣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