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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생동물의 친구 Aug 27. 2018

보편적 가치를 알려준 제비, 이제는 우리가 보답할 때.

우리는 흥부일까, 놀부일까?

우리에게 무척이나 친숙한 새가 있습니다.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에서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착한 흥부에게는 복이 가득 담긴 박씨를, 욕심이 지나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놀부에게는 도깨비가 나오는 박씨를 물어다 준 ‘제비’가 그 주인공입니다. 제비의 습성은 조금 특이합니다. 대부분의 야생동물은 천적이나 다름없는 사람의 거주지 부근에서 살아가기를 꺼리는데, 제비는 정반대로 우리와 가까이, 그것도 놀랄 정도로 아주 가까이에서 살아갑니다.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에서 교훈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제비'


이처럼 특이한 제비의 습성은 유독 번식기에 두드러지는데요. 과거에 비해 제비의 수가 많이 줄었다곤 하지만 지금도 가끔 처마 밑에 튼 제비 둥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 녀석들도 떡하니 거주지를 마련하는 것이죠. 심지어 자기 둥지 아래서 사람들이 소란스레 떠들고 돌아다녀도 녀석들은 무던히 새끼를 길러냅니다. 


제비가 사람의 거주지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분명해 보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위협이 되긴 하지만 그럴 가능성을 다소 낮게 보는 거죠. 더 나아가 사람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보다 더 위험한 다른 천적의 접근을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실제로 사람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다른 야생동물이 제비를 포식하려고 사람의 거주지 주변에 머물기에는 그 위험부담이 너무 크니까요. 일종의 생존 전략인 셈이죠. 제비는 하늘이나 습지, 수면 위를 날아다니며 날벌레를 잡아먹습니다. 사람의 거주지 주변과 농경지가 즐비한 시골에는 이러한 날벌레가 많아 먹이를 확보하기도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날벌레를 잡아다 새끼에게 먹이는 모습


하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제비에게 큰 위험이 드리운 것은 분명합니다. 도시화, 산업화를 거치면서 주택구조와 토지를 이용하는 방식에 급속도로 큰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죠. 멋들어지게 늘어진 처마를 지닌 과거의 주택은 네모반듯한 아파트와 빌딩으로 변해갔죠. 또 둥지를 짓기 위해 진흙을 물어 나르던 물웅덩이와 습지는 어느새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였습니다. 이제 도심에서 제비를 만나기란 우연을 기대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도시는 회색빛 네모난 건물이 물결을 이룬다.


함께 살아가길 원하던 제비의 바람은 우리의 급속하고, 일방적인 변화로 빛바래 가지만 그래도 제비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골집과 전통시장의 처마에 여전히 녀석들이 머물고 있지요. 하지만 이곳의 제비 역시 순탄한 삶을 살아간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거주지와 농경지 부근의 날벌레를 잡아먹는 탓에 살충제에 쉽게 노출되면서 축적된 살충제에 중독되거나 번식장애로 이어지는 경우도 왕왕 관찰됩니다. 또 함께 살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에 의해 번식에 방해받는 모습도 쉽게 목격되죠. 


제비를 내쫓거나 방해하는 사람들 역시 이유는 있습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거주지에 녀석들이 남긴 배설물이나 흔적이 지저분하고 싫기 때문이죠. 그래서 둥지를 짓는 제비를 내쫓거나 방해하기도 하고, 애써 지어 놓은 둥지를 떼어내기도 합니다. 제비가 둥지를 틀면 대개 네다섯 개의 알을 낳습니다. 부화한 새끼는 약 3주 정도가 지나면 둥지를 떠나는데, 여름 내 한 둥지에서 두 번의 번식을 진행하기도 하죠. 그렇다면, 길어야 두세 달 정도 제비가 머문다는 뜻이 됩니다. 꽤 오랜기간 불편함이 수반되는거죠.

위 : 번식을 방해하기 위해 둥지에 이물질을 넣어둔 모습. / 아래 : 불편하다며 이미 새끼가 태어난 둥지 자체를 떼어낸 모습.


제비가 머물면 누군가에겐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둥지 아래로 떨어지면서 쌓이는 배설물이 더럽게 느껴지고, 녀석들이 물고 온 먹이의 흔적이나 빠진 깃털 따위로 주변이 지저분해져서 불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제비의 번식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지만 그러지 말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하지만 아무래도 아쉽습니다. 제비가 남기는 그런 흔적들이 수백 번 진흙과 지푸라기를 물어 날라 겨우 작디작은 둥지를 만들어 새끼를 길러내는 제비의 노력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일까요? 제비의 존재 자체가 싫고,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면 번식을 방해하지 않고도 제비 때문에 받는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충분히 고민해 볼 수 있는데 말이죠. 배설물이 떨어지는 것이 싫다면, 둥지 아래에 받침대를 놓아 바닥에 쌓이는 것을 막은 후 번식이 끝나면 제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제비의 둥지는 수백번 진흙과 지푸라기를 날라 만들어진다.  그들의 노력과 새생명의 소중함이 내가 감내해야 할 불편함과 견줄 수 있는 것일까?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제비와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둥지에서 새끼가 떨어지거나, 둥지 자체가 무너져 내려 위기에 처한 제비 가족을 도와달라는 연락도 많이 받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한결같이 진심으로 제비를 걱정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 했습니다. 

단순히 새끼가 떨어진 것이라면, 그 과정에서 외상이나 자세 이상이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충분히 관찰한 후 문제가 있다면 구조센터로 보내고, 그렇지 않다면 다시 둥지로 넣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보통 제비 둥지는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있기에 사다리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제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죠. 가끔 둥지 자체가 우수수 무너져 내리는 일도 발생합니다. 이 과정에서 새들이 다치지 않았더라도, 둥지가 사라졌기 때문에 계속해서 어미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기가 어려울 거라 단정 짓는 경우가 많은데,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둥지를 새로 달아주면 됩니다. 

훼손된 제비 둥지를 대신해 플라스틱 용기를 붙여주는 모습. 이와 같은 작업을 할 경우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필요하다면 관할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한다.


야생동물과 관련된 널리 알려진 정보 가운데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부분 이 바로 이것입니다. 새끼 동물을 사람이 만지면 냄새가 배어 어미가 더는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는 거짓 정보에 가깝습니다. 특히나 둥지에서 떨어져 사람이 다시 올려주는 정도의 접촉이라면 어미가 새끼를 돌보지 않을 리 없습니다(그러나 떨어진 후 시간이 오래 흘렀다면 어미가 이미 번식을 포기했을 수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많은 어미 새들은 둥지 모양이 조금 변했다고, 새끼가 새로운 둥지로 옮겨졌다고 쉽게 번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물론 위치가 심하게 달라지면 번식을 이어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둥지를 새로 달아 줄 때는 제비가 가장 선호하는 진흙으로 마치 그들이 만든 것처럼 정교하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게 쉽게 구할 수 있는 바구니나, 플라스틱 용기처럼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어 둥지의 역할을 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괜찮습니다. 둥지가 있던 장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준비한 용기를 붙인 후 새끼를 다시 넣어 주면 끝이죠. 그전에 빗물이 고이지 않도록 용기 바닥에 배수 구멍을 작게 내주는 것이 좋고, 그 위에 수건, 낙엽, 진흙 같은 바닥재를 적당히 깔아 주면 보온이나 완충, 미끄러짐 방지에 효과적입니다. 너무 무거워서 다시 떨어질 위험이 있거나 내구성이 약한 용기, 지나치게 깊거나 재질이 미끄러워 새끼들이 움직이기 불편한 용기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교체된 둥지를 관찰하며 어미가 다시금 찾아와 새끼를 돌보는지 반드시 확인해야겠죠? 

떨어진 둥지를 대신해 바구니를 달아주었고, 이내 찾아온 어미는 다시 새끼를 위해 먹이를 물어 날랐다.


전래동화에서 제비는 우리에게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일깨워 줬습니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나와 다른 존재를 배려하며 살아가자는 교훈 말이죠. 이제는 그 가치를 나부터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집, 가게 처마 밑에 제비의 배설물이 쌓이는 것을 이해하고, 떨어진 새끼 제비를 둥지에 올려주고, 바구니나 그릇을 이용해 대체 둥지를 만들어 주는 노력 말입니다. 무엇보다 함께 살아가자고 내민 제비의 손을 잡아줄 따뜻한 마음,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혹시 모른다. 제비가 우리에게 행복이라는 박씨를 물어다 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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