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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생동물의 친구 May 02. 2018

여전한 보신문화, 이대로 괜찮을까?

잘못된 보신 문화 여전… 인공증식 핑계로 단속도 힘들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 뱀을 구조해 달라는 신고가 들어오면 야생동물구조센터는 바짝 긴장합니다. 뱀을 다루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적게는 수십 마리에서 많게는 수백 마리를 한꺼번에 구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몇 마리 정도를 구조하는 일이야 가끔 있지만, 수백 마리를 구조해야 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습니다. 


뱀을 비롯한 파충류 구조를 요청하는 이유는 그리 다양하지 않습니다. 보통 인가 근처에 머물다 건물 내부나 인공구조물에 잘못 들어와 고립된 채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럴 때 활동성이나 외상 여부를 파악한 뒤 이상이 없다면 적합한 서식 환경에 풀어주면 그만입니다. 물론 파충류도 차량충돌을 포함한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긴 하지만, 살아있는 상태여야 구조를 진행하는 센터의 특성상 신고와 접수로 이어지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위험에 노출되는 순간 생명을 잃을 정도로 치명적인 손상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좌 : 건물에 잘못 들어와 발견된 유혈목이 / 우 : 달리는 차량에 밟혀 폐사한 유혈목이


어쨌든 파충류 몇 마리 정도 구조하는 일이야 가끔 있지만, 간혹 수백 마리를 구조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럴 때면 녀석들을 살펴야 할 직원들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질 수밖에요. 그런 경험은 가끔씩 불현듯 떠오르는 트라우마로 남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뱀이 한꺼번에 구조되는 걸까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모든 뱀은 동면, 즉 겨울잠에 듭니다. 추운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부지런히 잠자리를 찾아 이동하죠. 대개 산속의 돌이나 나무의 뿌리 틈, 낙엽 더미의 깊숙한 곳이 이들의 겨울을 책임질 보금자리입니다. 하지만 이 겨울잠을 자러 가는 길 자체가 위험천만한 모험입니다. 뱀들의 습성을 아는 일부 사람들이 녀석들의 이동 경로를 막고, 곳곳에 덫을 놓아 포획하기 때문이죠.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뱀 역시 똑같은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등산객이나 밀렵감시원에게 발견되면 구조되어 구조센터에 들어오게 됩니다만, 불법적으로 행해지는 포획인 만큼 단속도 쉽지 않으니 이를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죠.

겨울잠을 자는 뱀의 습성을 교묘히 이용하는 뱀 덫. 이 작은 통발에 많게는 수십 마리가 비좁게 얽혀 있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뱀이 덫에 갇힌 채 들어오면 직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서로 엉켜 있는 뱀들을 풀어내는 일입니다. 정말 수십, 수백 마리의 뱀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거든요.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녀석들이 머물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조르기도 하고, 무게에 짓눌려 결국 폐사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나마 숨이 붙어있는 녀석들이라도 살리기 위해 풀어내어 상태를 살피는데, 이 중에는 공격성이 강하거나 독을 지닌 종도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뱀을 이렇게나 많이 포획하는 걸까요?

엉켜있던 뱀을 풀어내어 종류별로 분류했다. 이 중 대부분은 짓눌려 죽은 상태였다.


문제의 답은 여전히 그릇된 보신(補腎) 문화에 있습니다.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야생동물을 먹으면 몸에 좋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떠돌고, 또 누군가 에겐 솔깃한 유혹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이 터무니없는 헛소문에 불과합니다. 건강 회복은커녕 오히려 야생동물이 지닌 기생충이나 질병에 옮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특히나 야생동물의 포획과 거래는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까지 굉장히 비위생적인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적발되어 압수된 뱀을 담근 술. 그릇된 보신 문화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원주지방환경청 제공)


설령 몸에 좋다 한들,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이뤄지는 일에 절 대 면죄부를 줄 수 없습니다. 뱀 덫을 이용해 불특정 다수의 뱀을 포획하는 활동은 불법이 확실하거든요. 문제는 포획만이 아닙니다. 현재 허가받지 않은 이가 야생동물을 유통, 거래하면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포획하는 사람도, 판매하는 사람도, 구매하는 사람도 모두 법을 어기는 것이지요.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상업적인 목적으로 야생 뱀의 부분적 포획과 인공증식을 허가받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태어난 뱀은 허가인의 사유재산으로 인정되죠. 그렇다 보니 불법성 여부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건강원에 머무는 뱀을 적발했다 하더라도, 이 뱀이 산에서 덫을 이용해 포획한 것인지, 인공증식을 통해 번식시킨 개체인지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도는 분명 악용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건강원에서 발견되어 압수한 멸종위기야생생물 구렁이. 이 뱀 말고도 수백 마리가 더 있었지만 불법포획 여부를 증명할 수 없어 몰수하지 못했다고 한다. 남은 뱀들은 어떻게 될까?


문제는 또 있습니다. 대중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방송 매체 역시 근거 없는 보신 문화를 희화화하거나 부추기는 내용을 책임감 없이 무차별적으로 방송하고 있습니다. 은퇴한 운동선수가 현역시절 먹어보지 않은 보신음식(야생동물을 포함해)이 없다는 발언을 일종의 자랑이나 무용담처럼 늘어놓은 내용이 버젓이 방송됩니다. 야생동물 섭취가 효과가 있었던 것처럼(설령 효과가 있었다고 믿더라도), 그런 행동에 불법적 요소가 있음은 배제한 채 대중을 현혹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욕구가 제어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불가피할 수밖에요. 무너져가는 생태계에서 보호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오늘날 야생동물의 삶은, 누군가의 가벼운 욕구와 아무런 근거 없는 문화의 악습을 위해 희생되지 않을 권리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누군가의 불법적인, 그릇된 욕구 때문에 희생되지 않을 권리를 이야기한다. 야생동물에게도 필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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