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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생동물의 친구 Aug 07. 2020

야생동물을 위한 최후의 보루, 그 가치를 지킨다는 것은

역할은 책임감 있게, 가치와 상황에 따른 차별과 외면 없어야

최근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어린 너구리 한 마리가 접수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녀석의 우여곡절 많았던 사연과, 그 녀석을 곁에서 돌보던 보호자가 수도 없이 느꼈을 절망감을 소개하려 합니다. 이 이야기는 보호자의 경험에 따른 증언에 기반합니다.


충남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생활하던 일반인 부부가 산책길에 우연히 개선충에 감염된 상태로 쓰러져있는 어린 너구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개선충증(Scabies, Sarcoptic mange infection)은 외부 기생충인 개선충이 원인체입니다. 대다수의 육식을 하는 포유류가 이 기생충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지만, 국내 야생동물 중에는 단연 너구리가 감염에 취약합니다. 어쨌든 개선충은 너구리의 피부에 굴을 파고 들어가 삽니다. 이 과정에서 귀와 겨드랑이, 복부, 다리에서 시작되어 몸 전체의 털이 빠지고, 심한 가려움증, 표피박리, 만성피부염 등을 유발합니다. 갈라진 피부에 상처가 발생하면서 2차 세균 감염에도 취약해지죠. 심한 가려움증으로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고 먹이를 취하여 먹을 기회 역시 줄면서 체중 감소, 탈수로 이어질 수밖에요. 궁극적으로 심각한 영양 결핍과 면역력 저하, 저체온증에 따른 폐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너구리에겐 그만큼이나 치명적인 질병이죠.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와 정상의 너구리를 비교해보면 과연 같은 종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동물에 대한 보호의지가 높았던 부부는 당장에 녀석을 구조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노력합니다. 우선 가장 먼저 해당 지역의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 연락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부부에게 크나큰 절망감을 안깁니다.

"저희 기관이 현재 너무 열악해서요. 그 정도로 심하게 감염된 너구리는 절대로 못 살려요. 어차피 구조해도 죽으니까 그냥 그 자리에 두고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살릴 수 없어 구조하지 않는다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화들짝 놀란 부부는 실망감과 분노를 삼키며 다시금 물었습니다. 

"이 정도 심각한 동물은 구조 안 하신다면, 그럼 어떤 동물의 경우에 구조를 하시는 건가요?"

"살릴 수 있다고 판단되는 동물만 접수받는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답변이 너무 황당해서 따질 수도 없었다는 부부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기관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번엔 다른 자치구에 위치한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였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정도 상태면 살릴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먼 거리를 이동하여 굳이 인수를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네요. 그래도 데려오신다면 접수야 받겠지만 이후 너구리의 생/사 등 결과 확인은 해드릴 수 없습니다."

부부는 그때서야 깨닫습니다.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라는 곳은 동물을 믿고 맡길 곳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직접 상태를 확인한 것도 아니면서 겨우 사진 한 장에 너무 가볍게 평가를 내리고, 심지어 포기를 서슴지 않고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회피하는 기관의 태도를 보면서 신뢰가 산산이 깨어진 겁니다.

부부에게 처음 구조되었을 당시의 상태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이 단편적인 모습이 치료가 가능하고 불가능하고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결국 부부는 자신들이 직접 너구리를 돌보기로 결심합니다. 아니, 도움을 요청했던 기관 어디에서도 도움을 주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죠. 이후 부부는 너구리를 데리고 단골 동물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시작합니다. 보통의 일반 동물병원이라면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의 치료를 꺼리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만, 반려견을 4마리나 키우면서 평소 동물 사랑에 지극한 모습을 보이던 부부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생명이 꺼질 것만 같았던,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서 살릴 수 없을 거라고 장담했던 너구리는 그렇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약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고, 이후에도 통원치료를 이어갑니다. 부부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너구리 역시 조금씩 생명의 끈을 강하게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여느 너구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왔고 드디어 개선충증의 완치 판정을 받습니다. 

한 달간 노심초사 너구리를 돌보던 부부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본인들의 소중한 시간은 물론 150만 원이 훌쩍 넘는 병원비를 지출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반려동물도 아닌, 야생동물을 위해 개인이 지출하기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을 겁니다. 물론 시간과 돈보다 중요한 것은 너구리를 보며 항상 마음 졸였을 부부의 고된 감정의 소모였겠죠.

치료가 끝남에 따라 부부는 또다시 고민에 빠집니다. 누구보다 너구리를 위했던 부부는 녀석이 야생으로 돌아가 진정한 너구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야생성을 유지하고 살아감에 있어 필요한 경험과 행동을 축적하기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죠. 이에 다시금 어떤 조치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인터넷 검색을 통해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써낸 여러 글과 기사를 보게 됩니다. 글을 읽어보면서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가 야생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기존에 연락했었던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와는 다를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렇게 충남센터와 연락이 닿은 부부는 충분한 상의 끝에 너구리를 우리에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너구리를 보내며 함께 챙겨준 물품. 부부가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그동안 전국에 위치한 일부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서 야생동물 구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종종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지역에서 구조된 야생동물이 그 지역 구조센터에 보낼 수 없었다는 이유로 돌고 돌아 충남센터에 접수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역 주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인데도 말이죠. 물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역시 동물을 제때에 구조하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발생합니다. 허나 그 경우는 동시간 다른 현장에서 구조를 진행하고 있거나 시간 및 거리에 따른 물리적인 문제에 기반합니다. 국내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이라면 그 동물의 상태나 종, 법정보호 여부에 따른 차별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34조의 5 야생동물 치료기관의 지정취소'에 따르면 [특별한 사유 없이 조난당하거나 부상당한 야생동물의 구조ㆍ치료를 3회 이상 거부한 경우 기관 지정이 취소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 특별한 사유랄 것에 명확하게 제시된 기준이 없으니 사안에 따른 해석이 필요하겠다만, 환경과 시설이 열악하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명백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야생동물을 못 본 척 밀어내는 것이 그 합당한 사유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선 아무리 이해하려 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는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서 살릴 수 없다고 포기했던 녀석은 지금 너무나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몇몇의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서 본인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역할을 다 하지 않는 모습이 대중으로 하여금 야생동물을 관리하는 기관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는 곧 조난에 처한 야생동물이 구조되어 생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의 박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조 요청해도 어차피 거절하고, 구조해서 보내도 제대로 치료관리하지 않을 것이 뻔한데 무슨 내가 이 동물을 돕는 것이 소용인가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죠. 

문제는 또 있습니다. 소수의 기관에서 가지는 부적절한 태도가 열심히 노력하는 다수의 기관과 관계자 여러분의 희생과 수고를 빛바래게 만든다는 겁니다.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를 발전시키고, 그 역할의 중요성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고에 찬물을 끼얹음과 동시에 편견과 선입견에 그득 둘러싸이게 합니다.


확실히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는 열악한 점이 매우 많습니다. 동물을 충분히 계류시킬 수 있는 공간과 시설도, 그들을 관리할 수 있는 인력 역시 매우 부족합니다. 또 부족한 환경에서나마 최선의 운영을 하고자 노력하더라도 기관마다 그럴 수 없는 나름의 사정과 이해관계가 얽혀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책임과 의무를 내려놓는 것이 온당한 결정인지는 더 냉정하게 평가해야겠죠. 당장의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결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일 수 없습니다. 열악한 상황을 알리고 보다 나아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자격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묻고 싶습니다. 그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고,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를 말입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국 책임을 회피하기에 이르렀는지를 본인들이 스스로 끊임없이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는 멸종이라는 벼랑 끝에 몰린 채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런 우리마저 야생동물을 가치에 따라 구분하고 상황에 따라 외면한다면 야생동물은 어느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까요. 부디 그 가치를 스스로가 훼손하는 어리석은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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