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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Nov 08. 2020

응급실은 왜 보호자를 적으라고 하는가

그것은 내가 ‘집’을 탈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내게 집이란 단어는 오랫동안 다른 아이들이 그것을 인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기억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집’이라는 단어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단어에 더덕더덕 묻어 있는 과거의 공포스러운 기억이 아예 지워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리라. 나는 벌레나 곰팡이가 발견된 반찬통에서 내용물을 꺼내고 세제를 묻혀 닦아내도 어쩐지 그 통을 사용하기 찝찝한 것처럼, 아직도 집이라는 단어에서 친근감 보다는 공포를 느낀다.


집에서 나는 한 번도 안전한 적도, 따뜻한 적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적도, 누구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도, 나만의 공간을 가진 적도 없었다. 집이란 나보다 두 배는 넘는 기럭지를 가지고도 무엇이 부족한 지, 추가로 무기까지 들고 나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몇 분이 아닌 몇 백분에 걸쳐서 가하는 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집을 탈출한 것은 당연히 나를 샌드백으로 다루던 인간들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작 몇 만원을 가지고 탈출해서 일주일 넘게는 모텔에서 숙박했고, 그 다음에는 고시원으로 향했다. 아직도 고마운 게 있는데 고시원 여자 총무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후불도 괜찮다고 말해 준 것이었다. 그것이 일반적인 것이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내 얼굴의 멍자국과 쥐어뜯긴 흔적이 남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동정심을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탈출하기 직전, 아버지가 내 목을 졸라서 기절했었다. 그래서 목에는 땟국물 같은 손자국도 선연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고시원에서 나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었다. 고시원은 내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후불로 해 준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좋은 방을 선택하게 해 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나는 창문도 없고 그 고시원에서 가장 작아서 인기가 없어 항상 비어있던 방을 택했다. 거의 대부분의 고시원 방이 그렇겠지만 내가 선택한 방은 특히 작았다. 내 키는 160cm가 약간 넘는데, 그마저 구부려야 했다. 1인용 침대를 제외한 공간은 간신히 사람의 허벅지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였고, 침대에 누워 발을 뻗으면 무릎 위는 수납장과 같은 선상에 있게끔 되었다.

 

나는 이곳이 안전하다고 되뇌면서 누웠다. 그러나 잠을 잘 수 없었다. 잠든 족족 악몽을 꾸었다. 악몽에서 꿈을 꾸면, 검은색 천장이 이곳은 관속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너는 살아있는 게 아니라, 며칠 전에 아버지의 손에 결국 숨이 끊어져서 관 속에 누워있는 것 뿐이다, 살아있다는 상상을 하고 있을 뿐이다 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점점 그 안에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게 되었다. 공기 순환의 문제인가 싶어 환기도 해 보고, 문 위에 달려있는 창문을 최대한 열기도 했지만 도무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서 그 안에 있기 힘들었다. 


그 날, 나는 고시원 바깥으로 휘청거리면서 내려갔다. 그 고시원은 3층에 있었는데, 나는 엘리베이터가 8층에서 내려오는 시간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거의 발목을 꺾일 뻔한 것을 감수하면서, 화재가 난 건물에서 도망치듯이 그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숨이 도무지 쉬어지지 않았다.


119를 불렀다. 소방대원의 태도는 거칠지 않고 다정했다. 나는 어느 병원을 원하냐는 말에 근처 아무 병원에나 데려다 달라고 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병원은 규모가 꽤 큰, 아마 2차 병원이었던 것 같다. 구급대원은 나와 함께 병원의 접수계로 왔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문제였다. 접수계에 앉은 여자는 오십 대 정도인 듯 했는데, 안경을 끼고 있고 조금 야무진 이미지였다. 그녀는 새파란 얼굴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면서 심장 쪽을 부여잡고 있는, 지금 생각하면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나에게 굳이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녀는 가족의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거기에 아무 이름이나 적어도 됐을 텐데, 나는 그때 너무 어리고 정보가 부족하고 요령이 없었다. 나는 정말로 내 목숨을 책임 질 누군가를 적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가족은 있지만 학대를 당하다가 탈출한 상태이기 때문에 적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짜증이 한껏 치솟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이랑 싸웠다고 못 적을 건 없잖아요, 적어요. 보호자가 필요하다니까요.

-응급실에 왔는데 왜 보호자가 필요한가요. 전 보호자가 없어요.

-아니 부모님이 보호자지 누가 보호자에요. 

-그러니까 그 부모님이 일반적인 부모 아니고요. 평생을 절 죽이려고 한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자 란에 쓰겠어요. 연락이라도 가면 큰일이라고요. 죽이러 쫓아온다고요. 아니 선생님은 저 보고 지금 죽으라는 건가요?


검은 장벽이 내 앞으로 내려왔다. 매질을 하고 목을 조르고, 널 죽이겠다고 침을 튀기며 선언하고, 미친 사람처럼 번뜩이는 눈으로 날 노려보던 사람에게 연락이 간다면, 나는 치료를 받기도 전에 죽을 게 틀림없었다. 연락처를 이 종이에 쓰면 나는 이 병원 침대에서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그는 어떤 방법을 써서든, 실수로 둔기를 내 위에 떨어뜨렸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내 위에 올라타 죽을 때까지 짓뭉개든, 아니면 저번에 못다 사용한 체력을 활용하여 내 내부의 장기가 파열될 때까지 때리든, 어떻게 해서든 나를 죽일 것이다. 그렇게 둬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이 같은 말은 내 입을 통해서 흘러나오지 않았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거기에 멈춰서서 그 장면에 압도되는 것뿐이었다.


그 사람은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강한 경멸의 빛이 그의 눈동자에 떠올라 있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나에 대한 비호감이 두 배로 늘어난 듯 했다. 이는 부모가 가해자일리 없다는,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주입하여 거의 브레인 워시 수준으로 사람들의 상식으로 자리잡은 전제 때문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이마에 주름을 잡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좋아요. 어찌됐든 좋으니까 보호자 써요. 부모님 없으면 친척 없어요?

-없어요. 혹시 친구나 그런 건 안 되나요?

-안 돼요. 법적으로 보호자 자격이 있는 사람을 써야 할 거 아니에요. 친구가 그런 자격이 될 리가 없잖아요?


그런 식으로 그 사람과 대화를 해야 했다. 구역질이 나고 쓰러질 것만 같았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구급대원이 중재에 나섰다. 


-구급대원은 보호자 등재 가능하잖아요? 제가 적을께요.


그가 그렇게 나서준 덕에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마주친 눈에서, 나는 그가 나를 동정하고 있다고 희미하게 느꼈다.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내 얼굴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 범벅이 되어 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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