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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Oct 23. 2022

개로 길러진 아이 6

아동학대 소설

본인이 밀었으면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서준이 넘어지는 소리에 앞서 가던 여자 한 명이 돌아보았다. 그제서야 엄마는 남의 눈을 신경쓰는 듯한 기색으로 웃음을 띄웠다. 이 모든 것이 장난이라는 듯이. 장난꾸러기 아들이 저 혼자 넘어진 듯이. 자신은 어린 아들을 약하다는 이유로 괴롭히지 않는 정상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이. 본인이 물리적인 원인을 제공한 게 아니라 아들의 발목이 문제라는 듯이.

그리고는 서준을 향해서도 상큼 웃어보였다.


도무지 보지 못했던 웃는 얼굴이었다. 아이스크림때문에 말을 걸었을 때를 포함하여 오늘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오랫만이었다. 가슴이 떨렸다.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남들 눈에 가해자로 보이지 않기 위한 가짜 웃음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서준은 반가웠다. 반가운 나머지 멋대로 믿었다.


엄마가 나에게 웃어 줬어.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나한테만 못되게 말은 하지만 사실은 진심은 형하고 다르지 않은 거야. 표현이 다를 뿐 마음은 같은 거야. 나는 어리니까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만의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거야.


그리고 오랫동안 서준은 그런 맥락의 문장으로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거의 만능에 가까운 변명이었고, 그보다 더 좋은 처방전은 없었다. 그걸 바르면 어떤 상처도 덮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서준에게는 그 약이 필요했다.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라는 약.


어머니가 자신을 낙태하려다 못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기 때문에, 사주 팔자가 하필이면 어머니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불리하게 나왔기 때문에, 단지 운이 안 좋았기 때문에, 엄마도 연약한 여자에 불과했기 때문에, 사회 상황이 그러했기 때문에, 사회가 여성에게 박하기 때문에, 어머니도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어머니의 앞날을 막았기 때문에, 형이 워낙 살갑게 굴어서 비교되기 때문에, 어머니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그 여자는 끝까지 형과 서준을 차별했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서준은 학교에서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고 배웠다. 계급제는 조선시대와 함께 사라졌다고 들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모든 자녀를 동등한 수준으로 사랑한다고. 도덕 교과서에도 국어 교과서에서도 나왔다. 학교도서관에서 빌린 책에도 적혀 있었다. 모든 부모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의심이 가는가? 날 사랑하는게 아닌 거 같은가? 그들의 표현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지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고생하고 있다, 알고보면 너를 위해 일하고 있다, 없는 돈을 쪼개고 본인 먹을 것을 아껴서 널 주고 있다, 네가 어려서 모를 뿐이다, 철없어서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어른이 되면 다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 커서 그 은혜를 갚아라, 뭐 그런 말들은 어디에도 있었고, 수없이 많이 발견되었다. 필사적일 정도로. 누군가 악을 쓰면서 외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맥락이 우스울 정도로 똑같아서 거리에서 뿌리는 싸구려 전단지 같기도 했다. 삼인성호이지 않은가.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어린아이는 힘이 없다.질 수밖에 없다. 이길 논리와 반박할 경험이 부족하다. 믿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과 어머니 사이에도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일어나는 중이라 생각했다. 내가 뭘 몰라서, 저 사람이 표현력이 부족해서, 내가 이해 못하는 어른의 사정이 있어서, 크면 얼마나 큰 사랑으로 나를 보듬어 주었는지 알게 될 거야, 이 서러움은 지연된 기쁨일 뿐이야.


서준이 진실을 알게 된 건 꽤나 시간이 지나고 많은 에너지와 눈물과 정성과 헛된 기대를 낭비한 뒤였다. 그래서 영원히 떠났다. 속시원했다.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도망치면 그 꼴을 더 이상 안 볼줄로만 알았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종류가 다양하다, 그 사람들마다 타인을 판결하고 재단하고 정의하는 기준이 각자 다 다르기 때문에, 어머니와 전혀 다른 인간을 만나면 그런 순간에서 멀어질 것이니 안심해도 되는 줄 알았다.어머니와 성격적인 특질이 다른 인간이 아니더라도, 부당함은 어린 시절만으로 끝날 줄 알았다. 자신의 가정만이 잘못된 곳이었고 세상의 다른 장소들은 그보다는 나을 걸로 예상했다. 그런데 여기 조민채 지부장과 이대혁 과장을 보니 그 믿음이 흔들렸다.


조민채 지부장은 어머니와는 조금 달랐다. 어머니보다 조민채 지부장이 더 우아했다. 어머니에게는 말 속에 가시를 숨겨 남을 괴롭히는 음험함이나 노련함, 교활함은 없었다. 비교를 하자면 좀 더 솔직하고 직선적이었다. 그러나 그래 봤자 비슷했다. 이대혁 과장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서준을 보는 시선에 감도는 냉기는 어린시절과 맥락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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