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대신 거리를 두었다.
이 글은 퇴사 에세이가 아니다.
회사에 남아 있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내가 선택한 태도와 판단을 기록한 글이다.
다만,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지 않기로 했다.
회사와의 거리를 두기 위해 나는 행동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 임원의 지시나 발언에 대해 추가질문을 하지 않는다.
- "네, 알겠습니다" 라는 짧은 응답으로 대화를 종료한다.
- 임원 앞에서는 더 이상 자연스러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 대신 상황에 맞는 표정과 태도를 유지한다.
과거에는 결정의 이유와 과정의 맥락을 질문했으나,
질문 시 불쾌감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이후 질문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이곳에서는 말이 돌고 돌아 전혀 다른 가십이 된다.
하나의 발언이 여러 단계를 거치며 변형되는 것이다.
그래서, 동료들, 특히 연차가 높은 소수의 선배들과는 사적인 소통을 중단했다.
회사 내부 이야기나 가십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 선택은 관계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다.
그래서 나는 관계를 정리하는 대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기로 했다.
그 거리를 가능하게 한 것이 글쓰기다.
글쓰기가 없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었을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글을 쓰고 난 뒤, 내 글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흩어진 과거의 파편들을 바라보고,
넣고 빼기를 하며 재배치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값진 일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인간만이 소유할 수 있는 가치,
사색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이해받기 위해 설명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설명보다 결과가, 맥락보다 수치가 우선되기 때문이다.
나는 영업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고, 그것 이외의 것은 하고 싶지 않다.
임원을 만난다는 생각의 경로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심장이 빠르게 요동친다.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과 함께 호흡이 짧아지면서, 겨드랑이에 땀이 차는 듯한 감각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실제 발한이 있는지와 상관없이, 몸이 불안 신호를 먼저 보낸다.
불안이 커질수록 시야가 흐릿해지고, 앞에 사람이 있어도 초점이 정확히 맞지 않는 상태가 된다.
영업총괄 대표로부터 미팅 제안 전화를 받을 때면, 매번 같은 반응이 나타난다.
신체 신호 이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장은 이것이다.
저 사람들은 나를 또 문제 있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이 문장에 떠오르면, 자동으로 하나의 장면이 재생된다. 본사에서 아무런 협의 없이 연장계약은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 이미지 속에서 나는 말이 없고, 설명도 하지 못한다.
흥미로운 점은, 현실의 나는 근로기준법을 알고 있고, 업무적으로 중대한 문제를 만든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이미지가 반복된다는 것은 이 회사에서 '옳음'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았던 경험이 누적되었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이 불안은 상상이 아니라, 과거에 학습된 생존 반응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나를 공격적으로 만드는 대신, 설명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했다.
내가 이 회사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평일 단독 근무, 그리고 10일 이상의 휴가, 이 장점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무너졌을 것이다.
나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하고, 남는 힘을 나의 삶에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기록하고, 거리를 둔다.
재정적 완충 지점을 위해 단순 계산으로 4~5년.
이미 4년을 버텨온 나에게 이 시간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계산 가능한 기간이다.
회사와의 거리는 체득했다.
매출과 고객 상담의 질에만 집중한다.
회사 기준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임원과의 접점은 최소화하고,
매장 동료와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이 일을 통해 나를 증명하려는 노력은 내려놓았다.
진짜로 원하는 것은 회사 밖에서,
내가 선택한 시간 안에서 키운다.
이것이 내가 회사를 떠나지 않고도
살아남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