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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Aug 31. 2023

엄마도 나 이렇게 키웠어?

아이를 키우다 보면



늦은 밤 잠든 나를 쓰다듬었을 엄마의 손길이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곤히 잠든 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거실 한복판에 쭈그려 앉아 벽지를 펼쳐 재단하고 기계처럼 풀을 바르면서,

엄마는 가끔 우리를 생각했을까.

언니들과 오빠 그리고 나, 우리 넷을 차례로 떠올렸을까?


우리 엄마는 도배를 했다.

이른 아침나가서 저녁 7시쯤 집에 돌아온 엄마의 머리에 굳은 풀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벽지를 바르는 풀 냄새를 알았다.

씻고 나온 엄마의 비누 냄새도 또렷하다.

밤이 되면 엄마는 침대에 누워 내 이름을 간절하게 불렀다.

그러면 나는 어두운 엄마 방 침대 끝에 쪼그려 앉는다.

엄마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주무를 때 가장 시원하다고 했다.

언니들과 오빠는 사춘기를 거치는 중이어서인지 엄마의 부름에 당장 응하지 않았다.

내 안마를 각별히 칭찬할 때 내 팔목 아귀에는 힘이 들어갔다.


엄마를 더 만족시켜야 해.


엄마가 스르르 잠이 든 것 같았다.

가끔 일찍 손을 떼면 ‘조금만 더 주물러줘..’라고 말했다.

엄마가 잠들 때까지 나는 숫자를 세었다.

50을 다 세고 나면 어쩐지 부족한 느낌이 들어 30, 20을 더 세었다.

결국 100번을 주무르고 난 뒤에 가만히 눈을 감고 의식처럼 기도를 시작한다.

‘우리 엄마가 건강하게 해 주세요. 우리 가족이 모두 행복하게 해 주세요.’


그 기도로 마무리를 하지 않으면 어쩐지 허전했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야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오늘 우리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것은 그 시절 성실하게 올린 나의 기도 덕분이라고 믿으련다.


아들이 차가운 내 팔에 제 뜨거운 살을 식힐 때,

나는 그런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의 살갗도 차고 시원했다.

보들 말랑 했다. 만지면 기분이 좋았다.

그때는 내 뜨거운 손이 엄마를 덥게 만드는 줄 몰랐다.

가끔은 엄마가 덥다며 만지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나는 풀이 죽어 서운해지곤 했다.

그래서 아들이 나를 만질 때, 나는 더웠지만 꾹 참고 견뎠다.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걸 안다면 더 문제다.

그저 공부라는 것을 하고 싶은 만큼, 견딜 수 있는 만큼만 했으면 좋겠다.

다만 나에게도 욕심이 있다면,

너의 살아갈 날에 우리의 순간이 더 많이 스미기를 바란다.

도려낼 수 없을 만큼 전염돼 있기를.

너와 나의 살이 맞대어 시원하고 더웠던 순간들이,

그 순간 내 몸에서 났던 향기가 너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잊히지 않기를,

내가 엄마에게서 받았던 사랑을,

너도 간직하며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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