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부모는 질문을 잘하는 부모
나는 2023년 1월부터 남편도 없이 여름의 호주에서 아이들과 두 달의 시간을 보냈다. 그 경험은 너무나 특별한 것이어서 나는 그 이야기를 무려 <우리의 겨울이 호주의 여름을 만나면>이라는 에세이로 출판하기도 했다.
여행이라고 하면 응당 낯선 환경을 체험하고 지식을 습득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가족의 배거본딩은 콘셉트가 분명했다. (배거본딩: 여행은 쉼이 아니라 변화라는 시각으로 6주 이상 낯선 곳을 걸으며 여행하는 문화) 그것은 완벽한 쉼을 통해 충전하고 거주지역을 바꿔봄으로써 삶의 방식도 바꿔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몇 년도에 지어졌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만들었는지..’ 등 가는 곳에 대한 지식전달에 힘을 들이지 않았다. 주위를 보면 가는 장소마다 유인물을 출력하거나 답사지에 대한 배경지식을 미리 학습하도록 해서 답사효과를 극대화시키는 훌륭한 부모님이 많다. ‘그럼 나도 이왕이면..’ 하는 마음으로 가야 할 곳을 분명히 하고 배경지식을 찾기 시작했더니 배거본딩은 어느새 마음의 짐이 되고 말았다.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다시 집중했다. 답사 준비는 검색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검색한 내용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또한 부모의 숙제가 될 수 있다. 지식은 그것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불어넣어야 한다. 내가 알아본 지식을 아이들에게 전달할 생각을 하니 갑자기 두통이 시작됐다. ‘쉼이 아니라 짐이 되겠군..’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행에세이를 읽을 때 작자가 방문한 장소에 얽힌 스토리나 역사적 의미 등을 설명하는 부분은 빠르게 훑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그 의미가 스토리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장소에 대한 지식이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들과 여행 중 나누는 대화나 반응, 에피소드에 더욱 흥미를 느끼곤 했다. 집 밖을 나서지 않으면 전혀 알기 힘든 아이들의 치명적인 매력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며, 아이들이 물어보는 것은 빠르게 검색해서 알려주었다. 나와 같은 독자들을 위해 검색할 수 있는 정보를 갖다 붙이는 일에 지면을 할애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음식도 다르지 않았다. 이왕이면 다양한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접해볼 수 있기를 바랐지만 현실과 이상은 괴리가 컸다. 아이들이 꺼려하는 음식점에 억지로 데려가 맛을 보자는 식의 체험은 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 잘 못 먹고 나오면 숙소로 돌아와 라면을 끓여줘야 했다. 똠양꿍의 새콤한 맛을 보고 싶어서 주문해 놓고 나 혼자 큰 냄비를 다 비우느라 고생한 적도 있다. 맛있다며 좀 먹어보라고 아이들을 설득하는 내 얼굴은 땀이 삐질 나는 이모티콘을 연상시켰다. 엄마의 짠한 표정을 보며 한 숟가락이라도 맛보는 아들에 비해 일단 아니다 싶으면 ‘우엑’과 ‘퉤퉤’를 일삼는 딸을 보며 고개를 떨궜다. 다양한 음식을 체험하는 것보다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을 천천히 맛있게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배거본딩에 더 가까웠다.
나는 어릴 적 위인전을 즐겨 읽었다. 평범한 아이가 영웅이 되어가는 극적인 과정을 보며 ‘나도 저럴 수 있어.’라는 막연한 희망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보니 위인전을 읽는 시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위인’보다 ‘위인을 만든 어머니’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훌륭한 어른이 된다. 보통은 위인전 처음에 유년 시절 영웅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어머니가 등장하고, 말미에는 어머니 덕분이 이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며 위인이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나는 이 레퍼토리에 매료되곤 했다. 라이트 형제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상상한 것을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부엌을 내어주고 실패하더라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비행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스티브 잡스도, 대부분 위인전 속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의견에 힘을 보태고, 잘 질문하고,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는 어머니였다. 유년시절 부모의 지지와 격려를 받고 자란 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뿌듯한 성취를 이뤄냈을 때 “제 어머니의 지지와 격려 덕분이었어요.”라고 한 줄만 얹어 고백해 준다면, 죽어서도 편히 잠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잘하는 것은 잘 질문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다. 많은 정보를 찾아 땀을 삐질 흘리며 알려주는 것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것에 호기심을 갖도록 질문하고 찾아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아이들이 궁금한 것에 대한 답이 오롯이 아이들의 지식이 된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질문이란 어떤 것일까?
“누가 이렇게 큰 정원을 만들었을까?”
“이 작품은 어디에 앉아서 어떤 사람이 그렸을까?”
“도로가 정말 깨끗해, 이 길을 청소하는 사람들은 대체 몇 시에 일어나는 걸까?”
사소하지만 흥미를 느낄만한 질문을 끊임없이 만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 질문이기도 했다. 어떤 답은 기상천외했고 내 예상을 빗나가기도 했다. 내가 한 질문에 탄력을 받은 아이들은 이건 뭐라고 검색해야 하지 싶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 소리 나는 신호등은 처음에 누가 만들었을까?”
“저 나무는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회를 자꾸 훔쳐가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새를 쓰레기새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이 공원에 사는 개미는 모두 몇 마리일까?”
"경비 아저씨들은 정말 훌륭한 일을 하는 것 같아, 이 아파트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잖아."
아이들이 질문하면서 가장 기뻐할 때는 내가 “와! 그거 진짜 좋은 질문인데?”라고 무릎을 치며 리액션을 해 줄 때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 정말 대단해!”나 “세상에, 너처럼 생각한 사람은 너 한 명뿐일 거야, 박수!”와 같은 다소 과장된 리액션도 내 전문이다. 처음에 했을 땐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만 질문에 신이 난 아이들과 엉뚱한 질문과 대답을 만드느라 혈안이 된 모습에 미소가 차올랐다. 아이들에겐 ‘지식’보다는 ‘느낌’이 남은 것 아닐까.
나는 위인전 속 어머니처럼 조금은 우직하고 잘 속아주며 격려하는 일에 더욱 매진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