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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Oct 19. 2023

친구 없는 할머니

자발적 고립

"난 친구가 거의 없어, 친구 사귈 시간이 어딨어?"


맹장수술로 입원했을 때 내 옆에 누워계신 할머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젊을 때 아이 셋을 낳았는데 남편분이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혼자 가진 것도 없이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안 해본 것 없이 다 했고, 지금은 건물을 한 채 갖고 계신다고 했다. 아이들도 다 자라서 유명한 IT회사에 다니고 있다며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 할머니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대단하시다며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친구가 없다는 말이 나를 다급히 슬프게 만들었다.


"동네에서 친구 사귀셔도 되잖아요? 요새는 노인정이나 문화센터에서 친구 사귀시던데요?"

"말도 마, 친구랑 같이 놀려면 돈 들잖아. 같이 밥도 먹어야 되고, 요새는 커피값도 얼마나 비싼데?"

"아...."


나는 할머니가 조금 외로워 보였는데 할머니는 전혀 외로워하지 않으셨다. 그럼 평소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냐고 물었더니 손주와 영상통화도 하시고 아들자식 반찬도 만들어주시면서 시간을 보내신다고 했다. 자식들 자주 만나냐고 물으니 타지로 취업을 해서 통 볼 새가 없다고 했다. 나는 다시 혼자서 삼 남매를 키우기 위해 갖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젊음을 반납했을 할머니의 과거를 상상했다.


"그래도 가끔 친구들하고도 어울리시면 재밌지 않나요?"

"재밌긴 한데, 다들 돈을 그렇게 안 쓸라고 그래, 돈 드니까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나아."


문득 나의 엄마가 떠올랐다. 얼마 전 나에게 여수로 가는 버스 티켓 2장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엄마는 차도 있고 운전도 하시는데 왜 여수같이 가까운 곳을 굳이 시외버스를 타고 가냐고 물었다.


"내가 운전도 하고 기름값도 내야 하는데 아깝잖아."

"어휴.. 기름값 얼마나 한다고, 내가 줄게! 친구에게 좀 베푼다고 생각하고 엄마가 운전하지 그래?"

"아이.. 나는 싫어!"


동행하는 사람이 엄마에게 좀 인색한 사람이어서 얄미운 마음에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 뒤 없이 엄마를 구두쇠같다고 탓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지인과 어디를 갈 때 내 차를 이용하는 것에 크게 인색하지 않은 편이라 그런 엄마의 마음 씀씀이가 싫었다. 


다만 나는 그 할머니와 내 엄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한 푼이라도 아껴 자식에게 써야했을 긴긴 과거의 시간이 습관으로 몸에 밴 것이다.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베풀 아량이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베푼다는 것마저도 사치였을 것이다. 억척스럽게 자식을 챙기느라 내 것 남에게 하나라도 뺏기기 싫었으리라. 그 억척스러움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인식할 수는 있다. 엄마와 그 할머니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학습된 본능 같은 것이리라. 슬프고 쓸쓸한 마음은 등 뒤로 숨기고 엄마와 할머니가 수고했던 과거의 시간들에 겸손하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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