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이버링 May 30. 2023

왜 어려운 일에 끌리는 걸까?

쉬운 일을 놔두고


물을 끓인다. 오동통 너구리 한 봉을 넣고 타이머를 5분에 맞춘다. 스프를 넣고 파송송 계란탁! 계란에 넣는 참치 맛도 일품. 여기에 콩나물까지 넣으면 저세상 맛.


나무젓가락이어야 한다. 면발의 뜨거움이 내 입술에 닿지 않게 하려면. 면발을 건져 후루룩, 콩나물에 엉킨 너구리 면발을 후루룩. 숟가락으로 끊긴 면발과 참치 건더기와 후레이크를 떠서 한입에 꿀꺽. 국물에 면발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면 아쉽지만 일어나 밥통으로 걸어간다. 뚜벅뚜벅. 밥을 한 공기 떠서 후~ 국물에 풍덩 빠뜨린 밥을 저벅저벅 뭉갠 뒤 참치 건더기와 끊어진 콩나물대가리들과 뭉텅 떠서 입에 넣는다. 우적우적. 배가 불러온다. 남은 국물까지 후루룩 마시고. 모서리에 고인 건더기까지 싹싹 긁어 입속으로 투하한다. 휴지로 입을 닦는다. 입을 닦은 휴지로 식탁에 튄 국물을 훔쳐 쓰레기통에 버린다. 냄비와 젓가락, 숟가락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물을 부어 불린다. 설거지는 이따가.


소파에 눕는다. 티브이를 켜고 채널을 돌린다. 채널을 돌리고 돌리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20대 이후로 하지 않게 된 라면세리머니다. 절대적으로 건강에 안 좋고 살찌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라면을 끓여 먹고 잠드는 일. 그리고 가장 어려운 일은 바로 이것이다.


뛴다. 오른다. 숨이 차다. 얼굴이 뻘게진다. 근육이 찢어질 것 같이 아프다. 죽을 것 같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호흡이 길어지면 겨우 버틸 수 있다. 딱 죽겠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과 가장 쉬운 일을 떠올려본다.


왜 평생 나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을 놔두고 어려운 일을 못해서 괴로워하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의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