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이버링 Jun 16. 2024

우리만 있으니까 너무 좋다.

코다리 맛집에서 실수를 했다.

이 글은 오랜만에 쓰는 반성문이다.


점심때 무등산 입구에 위치한 코다리 식당에 갔다. 이 식당은 봄, 가을 날씨가 선선할 때는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불과 한 달 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주문한 음식을 오래 기다려야 했을 만큼 손님이 많았지만, 날이 제법 더운 오늘은 무등산 입구에 등산객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식당에 들어섰을 때 나와 두 명의 일행이 첫 손님이었다.


이 식당에 처음 와 본 사람이라면  '왜 손님이 없어? 맛없는 것 아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평소 점심때 어르신들로 가득한 이 식당에 오늘 손님이 우리뿐인 것은 나에게는 횡재였다. 주문한 음식은 빨리 나올 것이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와 일행은 인기가 많은 창가 좌석에 앉았다. 뷔페식 반찬코너에서 두부와 묵 위로 양념장을 붓던 내가 말했다. "오늘 여기 특별히 전세 냈어." 내 목소리는 텅 빈 식당에  연극 대사처럼 울렸고, 자리에 앉은 일행은 이 식당을 예약한 나를 칭찬하듯 추켜세웠다.


이윽고 직원이 밑반찬과 공깃밥을 가지고 우리 테이블 근처로 왔다. 그가 그것들을 우리 테이블에 내려놓고 떠났을 때 조용한 분위기를 감탄하며 무심코 이 말이 튀어나왔다.


"손님이 없으니까 너무 좋다."


1.2.. 3... 정확히 3초 뒤, 나는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상이 됐다. 손님이 없어서 좋다는 말은 사장이나 사장의 가족일지도 모르는 그 직원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반찬을 서빙하고 주방으로 향할 때 등 뒤로 들려온 내 말에 지었을 직원의 찡그린 표정과, 주방 안에서 요리사와 눈치 없는 손님을 원망할 직원을 상상하며 나는 고개를 저었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쩌지? 내가 너무 큰 실수를 저질렀네. 어쩜 좋아."


민망함에 입술을 깨물고,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화끈거리는 날 보며, 나를 십 년도 넘게 봐온 일행들은 너무 자책하지 말라는 듯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웃어넘겼다. "원래 나이를 먹으면 눈치가 없어져, 나도 그런 실수 자주 해."라고 유머 섞인 위로도 곁들였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들은 절대 나처럼 눈치 없이 말할 사람들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감정의 옷을 쉽게 벗는 나 같은 사람에게나 나올 법한 실수였다. 그 생각이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아, 나는 어쩌면 이렇게도 눈치가 없을까!


코다리찜이 나오기 전까지 안절부절못했다. 자책감에 식은땀이 났고, 아까와는 달리 텅 빈 좌석을 원망하듯 둘러봤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우리가 먹을 코다리찜에 설마 침이라도 뱉는 건 아니겠지? (어떤 아르바이트생은 미운 손님이 먹을 음식에 침을 뱉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내 말을 못 들었을지도 몰라. 원래 손님이 많은데 오늘 같이 더운 날 손님이 없어서 오히려 직원들은 편할지도 몰라. 어쩌면 이따가 손님이 물밀 듯 밀려 들어올 수도 있지?'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고, 다만 한 팀의 손님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나는 손님이 우리뿐이 아닌 것에 자그맣게 안도했다.


이윽고 직원이 커다란 접시에 코다리찜을 내 왔다. 테이블에 놓인 푸짐하고 화려한 코다리찜을 보면서 평소와 다르지 않게 "우와!" 하고 감탄사가 터져 나왔지만 다분히 의도한 반응이었다. 코다리찜을 내려놓고 떠나는 직원이 들리길 바라며 "진짜 이 집 코다리가 제일 맛있어."라고 능청을 떨었다. 단골손님의 기분 좋은 추임새라기보다, 아까 한 눈치 없는 행동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싶은 몸부림에 가까웠다.


칼칼하고 감칠맛 나는 코다리찜에 밥 한 공기를 거뜬히 비우고 식당을 나섰지만, 그날 이후 며칠이 지나도내가 했던 실수가 잊히질 않는다. "우리 밖에 없으니까 너무 좋다."는 말은 마음으로만 했어야 했다. 입 밖으로는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말에는 '배려'라고는 없었다.


얼마 전 출근길 교통 체증으로 1-3분씩 지각하는 일이 늘면서, 직장 상사로부터 가급적 지각하지 않도록 조심해 달라는 당부를 들었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부랴부랴 출근하는 워킹맘의 설움에 상사의 무심한 충고는 형벌로 느껴졌다. 지각하는 직원에 대한 근태관리는 상사의 책임이 맞지만, '같은 워킹맘으로서 꼭 그런 말로 내 설움에 비수까지 꽂아야 했을까?' 배려라고는 없는 상사를 원망했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나는 상사를 탓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손님 없는 식당의 설움에 비수를 꽂은 장본인이 아닌가? 그토록 배려를 외치던 나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깊이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코다리 사건을 마음에 또렷하게 새기고, 배려 없는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나는 얼마나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었나 되돌아본다. 다시 찾아가 말할 순 없지만, 마음속으로 코다리집에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