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이버링 Jun 18. 2024

대학 교직원이 바라본 요즘 대학생들의 소통 방식

고요 속 긴밀한 소통

재학생 대상 진로특강에 동기부여 전문강사를 초청했다. 뒤부터 채워지는 세미나실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밖에서 소란스럽게 재잘대던 학생들은 세미나실 문턱을 넘어 들어오면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강의가 시작됐고 초청강사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자신의 프로필을 소개했다. 나는 학생들의 반응을 살폈다. 세미나실의 맨 뒤에 서 있었으므로 학생들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실로 '무반응'에 가까웠다. 잠깐의 불편한 침묵을 밀어내고 강사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스크린에 큼지막한 QR코드를 띄웠다.


지금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 속 QR코드에 접속해 주세요.


미동도 없던 학생들은 흥미를 보이며 일제히 스마트폰으로 QR을 찍었다. 나도 스마트폰을 꺼내 QR코드를 찍었다. 링크를 열어보니 하얀 웹페이지에 'Q. 오늘 무엇을 기대하고 특강에 참여했나요?'라는 질문 하나가 덩그러니 보였다. 페이지에 달랑 질문 하나라니, 참으로 직관적이다. 다시 고개를 들어 스크린을 쳐다봤다. 학생들의 응답이 스크린 위로 비눗방울처럼 하나둘씩 떠올랐다. 응답들은 눈치를 보더니 빠르게 이 공간에 있는 학생 수만큼 화면을 메웠다. 놀라운 일이었다.

'제가 잘하는 게 뭔지 알고 싶어요.'
'취업을 잘하려면 대학 때 무엇을 준비하면 될까요?'
'아르바이트 경험도 취업에 쓸모가 있을까요?'
'별생각 없이 왔어요.'
'재밌을 것 같아요.'


학생들이 소리 없이 말하고 있었다. 그런 고민이 있는 줄 몰랐다. 영혼 없는 무기력한 표정으로 시간을 때우고, 이수증을 받으려고만 오는 줄 알았다. 여전히 침묵한 학생들은 아까와는 달리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 듯 보였다.


강사는 비눗방울 같은 응답을 샅샅이 찾아 읽고 "오~ 이런 반응 좋아요." 같은 적당히 추임새도 더했다. 학생들은 응답의 주인을 모른 채로 잠자코 스크린에 집중했다. 강사의 말을 듣는 것보다 다른 친구들의 응답을 보는 게 더 신난 듯했다. 이후로도 강사는 강의 중간에 QR코드를 통해 여러 번 질문했고, 스크린에 빼곡히 채워진 응답의 개수는 대부분 세미나실을 채운 학생 수와 같거나 많았다. 어떤 응답은 누가 쓴 글인지 궁금할 정도로 참신했고, 유머가 넘치는 몇몇 응답에 학생들의 작은 웃음소리를 '겨우' 들을 수 있었다. 신기했다. 고요한 세미나실에서 말하는 사람은 강사뿐이었지만, 그들은 소통하고 있었다. 아주 긴밀하게.


나는 맨 뒤에서 이 장면을 낯설게 바라봤다. 강사는 질문만으로 강의를 이어가는 듯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학생이 스스로를 되돌아볼만한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 플랫폼 안 학생들은 앞다투어 자신의 의견을 내보였으나 세미나실은 전혀 시끄럽지 않았다.


강의 끝, 참여학생들에게 마지막 QR이 공개됐다. 특강 만족도 조사 참여 링크였다. 오늘의 강의가 어땠는지 다양한 항목에 답하고, 주관식으로 '좋았던 점이나 개선할 점 등'을 써내도록 한다. 다음 프로그램 기획에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함이다. 고요 속에서 마친 특강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은 고무적이었다.

'자기 의견을 말할 기회가 있어서 좋았다.'
'다른 친구들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어 좋았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재밌는 강의다. 다음에도 또 참여하고 싶다.'
'유익한 강의를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미나실 안에서는 말한 학생도, 들은 학생도 없었는데 학생들은 말하고 들었단다. 크게 웃는 사람도 없어서 재밌어했는지 도통 알 수 없었거늘 재밌었단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학생과 만족도 조사 응답 결과로만 ‘긴밀히’ 소통했다. 특강이 끝나 세미나실 문턱을 나서는 학생들이 다시 소란스러워지는 걸 보고 나는 자그마한 다짐을 했다.


고요 속에서라도  배움은 이어져야 한다. 익명이 편하다면 그렇게라도 말하게 해야 한다. 요즘 대학생의 소통 방식을 응원한다. 비판하거나 진단하려 들지 말고, 그들 편에 서서 함께 배워야겠다.


앞으로 초청 강사들에게 <멘티미터*>를 권해야겠다.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참여자의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웹 애플리케이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