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도둑을 잡는 법
새로운 한 주를 맞는 내 마음이 이전과 달리 가볍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마음 한편에서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재생되던 고민이 이번주부터는 재생을 멈췄기 때문이다. 시도때도 없이 나를 괴롭히는 고민의 주범은 바로 '오늘 뭐 먹지?'다.
일요일 저녁 식사를 차리고 온 가족이 식탁을 향해 앉았을 때, 나는 긴 포스트잇과 펜을 식탁에 올리며 모두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자, 이번주 식단을 정하자. 아무래도 지금 정해야 내 한주가 편할 것 같아."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을 지으며 남편이 물었다.
“난 자기 식단에 큰 불만 없는데?”
"그게 문제야. 늘 불규칙적인 저녁 메뉴를 완벽하게 정하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가 아파. 제발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해줘."
이때 눈치 빠른 둘째 딸이 귀엽게 나섰다.
"엄마, 나는 수요일에 김치찌개 먹을래.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어."
내 표정이 환해졌다. 듣던 중 반가운 대답이었다. 긴 포스트잇 위쪽에 간격을 두고 월, 화, 수, 목, 금이라 쓴 다음 수요일 아래 '저녁: 김치찌개(두부, 돼지고기)'라고 썼다. 냉장고에 두부는 있으니 퇴근길에 근처 마트에 들러 돼지고기만 조금 사가면 될 일이었다. 뒤이어 남편이 말했다.
"나는 화요일 회식."
다른 날 같으면 그를 강렬하게 쏘아봤을 나인데, 오히려 식단이 간소해질 생각에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남편이 저녁을 먹고 안 먹고는 식재료와 조리노동의 강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이기 때문이다. 미꾸라지처럼 위기를 모면한 남편은 화내려다 만 내 표정을 보고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나는 서둘러 화요일 아래 '남편회식, 간단한 저녁:'이라고 쓴 뒤 아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아들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엄마, 나는 국밥."
해장국, 추어탕 등 국물 요리에 밥 먹기 좋아하는 아들을 잘 알기에 나는 예상했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국밥을 대체할 부대찌개 밀키트가 냉동실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얄미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케이, 부대찌개로 하자."
"에이, 나는 국밥이 먹고 싶은데."
"라면 사리도 넣어줄게."
"오, 그럼 좋아요."
이런 식으로 요일별 식단이 얼추 정해졌다. 김치찌개를 먹는 날에는 계란찜을 더하기로 했고, 볶음밥 위에는 프라이를 올려 주기로 했다. 만만한 게 계란이다. 학원이나 운동 등으로 식사 시간이 매일 다른 우리 가족의 기호를 반영해 요일별 식단이 확정됐고, 나는 식단을 적은 포스트잇을 냉장고에 붙이며 말했다.
“자, 이제 누구도 나에게 저녁 메뉴가 뭐냐고 묻는 사람은 없겠지?”
으레 월요일 아침부터 하던 식단 고민을 접어도 된다는 사실은 묘한 허전함과 통쾌함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아이들은 퇴근한 나를 식당 아줌마 보듯 대하지 않을 것이다. 동네 단골 식재료 마트 판매 밴드 게시판도 열어 보지 않았다. 쿠팡 프레시 세일제품의 후기를 살피는 일도, '저녁 뭐 먹을래?'라고 아침부터 남편과의 카톡창에 쓰는 일도 멈췄다. 세상에, 일주일치 식단 하나 정했다고 이렇게 마음이 홀가분할 수도 있는 일인가!
개리 켈러의 책 <원씽>에서 저자는 중요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 환경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식사 시간, 아이들 등교 등 아무리 사소한 것도 생산성의 도둑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일요일 저녁 시간에 일주일 치 식단을 정한 것이 근래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환경을 내 편으로 만들고 나니 식단 고민에 쏟았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됐고, 절약한 에너지는 내 일상 곳곳에 긍정적으로 스며들었다. 필요할지 몰라 쟁여 둔 식재료를 버리는 일도 줄었고, 식단 고민에 일의 집중이 끊기는 일 또한 줄었다. 저녁 준비에 걸리는 시간을 가늠하니 퇴근 후 자투리 시간이 생겨 독서도 할 수 있게 됐고, 아이들에게 환한 미소를 짓는 엄마의 표정은 덤으로 따라왔다.
환경이 나를 돕게 만들자. 잠시 멈춰 내 생산성을 도둑질하는 녀석을 어떻게 붙잡을지 고민해 보자. 바쁜 하루 중에도 먼저 성공한 이들의 좋은 사례를 훔치는 일에 시간을 따로 떼어주자.
사소하지만 막강한 나의
<일요일 저녁시간 일주일치 식단 정하기>
아이디어를 훔쳐가실 분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