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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녹듯 알아차림

by 새이버링

6시 40분에 눈을 떴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아들을 깨워 옷을 입혔다. 실은 더 자게 하고 싶었다. 한참 클 때 많이 자야 키가 클 것이다. 이렇게 추운 날은 포근한 잠 한 모금이 간절하다. 컴컴한 새벽부터 느낄 시린 추위와 졸림, 이른 아침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해야 하는 부담을 주기 싫었다. 아들이 안쓰러웠다. 나는 남편을 반대했다. 주말을 포함해 일주일에 네 번이나 레슨을 받는 데 굳이 평일 새벽까지 훈련을 시켜야겠냐고 남편을 원망했다.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열 살도 안 된 꼬맹이들도 다 하는데 다 큰 녀석을 두둔하냐며 내게 핀잔을 줬다. 큰 대회를 열흘 앞두고 실력은 물론 체력도 키워야 하니 한 번이라도 더 훈련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남편이 아닌) 아들의 의사에 따르기로 했다. 밤 사이 내린 눈 탓에 제설이 잘 되지 않은 길을 아슬아슬 피해 빙상장으로 향했다. 남편은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출근했으니 바래다주는 일은 내 몫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엉금엉금 주행하는 출근 차량이 꽤 많이 보였다. 신호 대기 중 조수석에 앉아 반쯤 눈이 감긴 아들에게 “피곤하지? 진짜 가기 싫겠다...” 위로인지 격려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춥고 피곤하지만 가서 운동하다 보면 땀이 나서 춥지 않을 거야.” 열네 살짜리 아들이 마흔세 살 엄마보다 훨씬 낫다.


빙상장에 도착하니 훈련하러 나온 어린이들, 근처에 있는 수영장에 가려고 주차한 사람들로 주차장 일대가 붐볐다. 꽁꽁 언 겨울 아침, 내 생각과 달리 이곳은 운동하러 아침을 깨운 사람들의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이불 속에 있어야 할 시간 아닌가? 아직 해도 안 떴는데? 아이를 바래다주러 나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세상이다. 내 우주 속에는 그런 정체성이 없다. 너무 춥고 눈이 많이 왔다는 핑계로 매일 했던 아침 산책도 너끈히 건너뛴 나다. 이곳에선 날씨쯤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듯 운동하러 나온 무수한 인기척들이 나를 압도했다. 이게 뭐가 무리하는 거냐고 나를 탓하던 남편도 멀리서 거드는 것 같았다.


아이를 내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뜨는 해와 함께 가슴속에서 희미한 것이 꿈틀거렸다. 힘을 내봐야겠다. 연소되어 식은 성냥에 새롭게 불을 붙인다. 겨우내 꼬깃하게 움츠러든 의지를 살살 펼친다. 쉬운 것, 편한 것, 따뜻한 것, 안전하게 사는 것을 기꺼이 등지며 어렵고 힘든 선택을 하는 용기가 움튼다.


그렇게 내 마음에 서둘러 봄이 찾아오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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