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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나를 데리고 간 곳

스텔라장 l'amour les baguettes paris

by 새이버링

스텔라장의 l'amour les baguettes paris라는 곡을 처음 들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지금은 떠올리기만 해도 아련한 지난 호주 두 달 살기 초반에, 시드니 대학 스포츠캠프에 아이들을 바래다주고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할 생각에 한껏 들뜬 마음으로 버스에 탄 참이었다. 귀에 에어팟을 꽂았다. 아무 노래라도, 나와주라는 바람으로 적당한 플레이리스트를 골랐다. 내키지 않은 낯선 곡들을 두어 번 건너뛰니 정적과 함께 부드럽고 차분한 피아노 반주가 들려왔다. 눈이 번쩍 뜨였다. 순간 목 뒤로 전율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이런 노래가 있었어?' 서둘러 제목을 살폈다. 불어로 된 제목이 낯설다. 가사도 불어로 들린다. 불어는 전혀 모르는 나지만 스텔라장의 목소리만큼은 완벽하게 노이즈캔슬링되어 온몸으로 빨려 들어왔다. 고개를 들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키카 큰 나무와 영문자가 새겨진 건물, 일상 속에서 바쁘게 걷고 있는 사람들, 이 모든 풍경을 노래 속에 가뒀다. ‘언젠가 이 놀라운 순간을 기억할거야.’


버스의 움직임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어떤 책임과 의무에도 묶여있지 않은 이십 대 여자가, 혼자 타국으로 유학을 와서 일상을 이어 나가는 오늘을 상상한다. 학교 수업을 가는 길일까? 아니면 아르바이트 면접에 떨어져 망연자실했고 통장에는 생활비가 바닥을 드러내는 우울한 순간일지도. 뭐라도 좋았다. 상상 속에서 나는 혼자다. 그런데 홀로인 내가 너무 좋은 것이다. 이국적인 풍경이, 따뜻한 날씨와 푸른 하늘이 있으니까. 외로움이 싫지 않게 이 노래가 날 위로해주고 있으니까. 그 위로가 좋아서, 따뜻해서, 누군지 모르는 가수마저도 사랑하게 될 것 같았다. 버스가 움직이고 멈출 때마다 내 몸도 앞 뒤로 움직이고, 느리고 빠른 박자에 맞춰 차창 밖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나를 이 노래가 끝까지 지켜봐 주었다. 3분도 채 안 돼 곡이 끝나니 꼭 다른 세상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계속 이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노래를 반복재생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버스에서 내리고 걷고 카페를 찾아 고개를 돌릴 때에도, 주문한 플랫화이트와 수박케이크를 맛볼 때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를 낯선 곳으로 들어 올리던 곡. 갑자기 라디오에서 이 곡이 흘러나오니 심장이 멎을 듯 전율한다. 처음 이 곡을 마주한 순간이 떠오른다. 마치 첫사랑을 우연히 만난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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