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의 세계에 입문했다는 기쁨

by 새이버링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다. 배정된 중학교는 집에서 걸어다니기엔 꽤 거리가 있어 대책이 필요했다. 내가 출근하는 길에 학교 앞에서 내려주고, 하교는 시내버스를 타고 오면 되겠지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중학교 앞은 출근 시간에 워낙 막히는 구간이고, 둘째를 집에 두고 먼저 집을 나서야 해서 마음에 걸렸다. 깊은 고민 끝에 결국 아들의 등하교 둘 다 시내버스에 맡겨 보기로 결정했다.


집 근처에서 중학교까지 가는 버스노선은 2개나 있지만 둘 다 자주 오는 버스가 아니라 오래 기다리지 않으려면 도착시간을 잘 예측해 집을 나서야 한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도보 7분거리. 엘리베이터가 늦게 오거나, 한 번 건너는 신호등이 늦게 바뀌거나, 한 눈을 팔거나... 그 밖의 예상치 못한 요인들로 버스를 놓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등교 전 날 온 가족이 나서 직접 버스를 타 봤다. 이게 뭐라고 온 가족이 대동할 일인가 싶었지만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조심스러웠다. 같이 탈 때는 별 어려움이 없지만 혼자도 잘 탈 수 있을지, 혹시 소지품을 놓고 내리는 건 아닌지 등 오만가지 걱정이 들어 아들에게 여러 번 주의를 당부했다. 버스앱을 통해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하는 방법도 알려줬다. 덩치가 나를 뛰어넘은 다 큰 아들에게 내가 너무 유난을 떠는 건 아닌지 싶기도 했다.


대망의 등교일이 밝았다.

나는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한다는 벅참보다 혼자 버스를 잘 타고 학교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에 온 마음이 향해 있었다. 비가 조금 내렸는데 버스에 두고 내릴 가능성까지 생각해서 잃어버려도 괜찮은 우산을 손에 쥐어줬다. 현관문을 나선 지 5분 뒤 전화를 걸어 정류장에 도착은 했는지 묻고, 버스가 곧 오니 기다렸다가 잘 타라고 단단히 일렀다. 아들도 제법 긴장한 듯 보였다. "어, 엄마 버스 온다. 이거 탈게." 말하며 버스를 탔다. 나는 문자로 '화이팅'이라고 보냈다. 도착하면 꼭 전화하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버스를 탄 지 한참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이 시간이면 도착해서 학교에 들어갔을 시간인데,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더니 '전원이 꺼져있어...'라는 안내음성이 흘러나왔다. 백만 분의 일 확률로 무슨 사고가 생긴 건 아니겠지 걱정했지만, 중학교에 입실하면서 전원을 끄고 휴대폰을 제출했을 확률이 높다. 저도 버스에서 내려 친구를 만났거나 학교를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전화하는 걸 깜빡했겠지. 혼자서 버스를 잘 타고 등교했을 거란 생각에 미소가 방긋 퍼졌다.


나와 아들은 007 작전을 펼치듯 버스시간과 정류장 정보를 촘촘히 주고 받았고, 아들은 그날 버스를 타고 집까지 무사히 돌아왔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버스를 타는 일이 조금씩 수월해지면서 긴장의 사슬은 느슨해졌다. 아들이 버스 등하교를 한 지 4일째 되는 오늘, 나에게 어떤 생각이 찾아왔다.


아들은 이제 등굣길 버스정류장을 다 외운 것 같다. 버스 안에서 울리는 음성메시지를 흉내내기도 하고 기다리는 동안 다른 버스의 노선으로 몇 번을 타면 어디를 갈 수 있고, 친구는 다른 버스를 탄다고 말하며 안 타본 버스에도 관심을 갖는 눈치다. 아들이 버스의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이제 내 마음은 노심초사에서 설렘으로 바뀌었다. 시내버스의 세계에 입문했다는 기쁨. 나에게도 시내버스에 얽힌 작지만 소중한 추억이 있다. 그것은 스물셋,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처음으로 버스를 탔던 날의 기쁨이다.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날의 벅참과 설렘을 잊지 못한다.



홈스테이 했던 집은 시드니 캐머레이라는 부촌에 있었다. 어학원은 시티에 있었는데 홈스테이 집까지 가는 지하철이 없어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라 종이로 된 버스노선표를 보고 버스 노선을 확인해야 했다. 한국도 아닌 낯선 호주에서 처음으로 버스를 타는 일은 난이도 최상의 도전이었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였구나! 내가 아들 혼자 버스를 태우는 일이 그토록 별스럽게 긴장이 됐던 게.) 안내표에 따라 기다렸던 버스를 타고 캐머레이로 향하던 날, 내가 탄 버스가 구불어진 골목골목을 돌아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버스에서 내려 내 발이 땅에 닿던 순간, 기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떠나는 버스를 쳐다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여기서 처음으로 버스를 탔어!'


이제 버스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버스를 타면서 보이는 가정집, 그 창 안으로 보이는 아기자기한 소품들, 파스타병이나 조리도구, 체크무늬 커튼 같은 것들이 여과 없이 내 눈을 꽉 채웠다. 세상에 막 눈 뜬 아이처럼 뛸 듯이 기뻐했다. 아이리버 MP3플레이어 이어폰을 꽂은 귀로 들리는 에이브릴 라빈의 음악과 난생처음 마주하는 세계의 풍경들은 이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깊게 자리했다. 그 추억이 새삼 떠올라 마음이 몽글몽글 두근거린 것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 서서 혹은 앉아서 갈 때 느낄 손의 감촉과 멍한 표정,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을 지켜보는 일, 북적이는 소음과 떠오르는 생각들... 십 대 소년이 혼자 시내버스를 타고 가면서 만들어질 자그마한 세계를 생각한다. 3년 동안 반복할 이 행위는, 마치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의 마음속 생각의 섬처럼 다채롭고 풍요롭게 아들의 성장을 도울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이 처음인 십 대 아들의 세계를 생각하며 설레기도, 한편으로는 샘도 났다.


주말에는 파티를 해야겠다.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한 사실에 앞서 버스의 세계에 입문했다는 사실을 축하해 줘야겠다. 앞으로 탄생할 모든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