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워킹맘의 일기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by 새이버링

일하다가 피아노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이가 제시간에 안 온 지 며칠 됐다고 했다. 세 번 기회를 줬는데 또 늦어서 엄마에게 통보를 한단다. 이따 저녁에 만나자마자 말랑말랑 웃는 너를 잔소리로 반길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난다.

태권도 학원에서 문자가 왔다. 새로운 출석 알림 어플이 출시 됐으니 앱을 깔라고 문자가 두 번 왔다. 앱을 깔고 로그인 시도 중 업무 전화도 오고, 누가 부르기도 하고, 하여간 아직도 가입을 못 했다.(한숨)

한참 뒤 집에 도착한 아들이 집에 먹을 게 없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먹으라고 한 것은 별로 안 당긴다고 한다. 나는 기지를 발휘해 빠르게 냉동실을 스캔해 아들의 그날 기분에 맞는 냉동식품을 추천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e알리미가 온다. 학부모가 된 지 7년째, 여전히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번갈아 오는 알림 중 뭐가 중헌지 종종 헷갈린다.


퇴근 후 서점 앞에 주차했다. 부쩍 수학을 싫어하는 둘째 아이가 어렵지 않게 풀 만한 수학 문제집을 골라 샀다. 그런 다음 장봐주는 언니에 들러 오늘 저녁으로 미리 주문해 둔 무거운 갈비와 상추를 샀다. 그런 다음 세탁소에 들러 드라이가 완료된 겨울옷들을 찾고 차에 쑤셔 넣었다.


사무실에서 나온 지 거의 1시간 만에 아파트 지하에 주차를 했다. 내 가방과 아이 문제집과 무거운 저녁거리와 두툼한 겨울옷가지들을 끌어안고 눈사람이 된 나는 뒤뚱뒤뚱 공동현관에 들어섰다. 기다리는 엘리베이터 앞에 하나둘씩 하루를 퇴근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2층, 5층, 11층, 13층을 차례로 들린 뒤 마침내 14층 내 집 앞에 도착했을 때, 택배아저씨가 무심히 던지고 간 택배봉투가 나를 반긴다. 현관문을 겨우 열어 이고 지고 온 물건들을 안으로 내팽개친 뒤, 내 손길을 기다리는 택배봉투 서너 개를 질질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서둘러 밥을 차려야 하고....


나는 오늘 하루를 미래에 어떻게 기억할까? 10년, 20년 뒤에 10년, 20년 전 오늘이 기억나지 않을까 봐.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하루를 기록한다. 이 글을 읽으면 정신없이 바쁜 것이 당연했던 오늘이 고스란히 떠오르지 않을까? 궁금하다. 이 글을 읽고 10년 뒤, 20년 뒤의 나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혹시 이 순간이 좀 그리울까? 자그마한 녀석들이 밥 달라고,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짹짹대는 지저귐이 숨 막히게 그리울지도 몰라. 텅 빈 집 안, 쓸쓸한 주말에 혼자 앉아 이 글을 다 읽고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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