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돼야 공감하는
드라마 <서초동>에서 변호사 친구인 안주형(이종석)에게 불륜, 이혼 등을 상담한 그의 동창들은 그를 동창모임에서 만나는 것을 어쩐지 꺼린다. 그것을 이미 눈치 챈 주형은 변호사 동료이자 애인인 희지에게 가까운 사람의 법률 상담을 해주고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는 챙기지 말라고 조언한다. 애초에 기억에서 지워버리면 더 좋다고. 희지는 친구인데 챙기지 않으면 더 멀어지지 않겠냐고 되묻는데 9년 차 어쏘 변호사 주형은 이렇게 대답한다.
“안 좋은 일일수록 모른 척해야 안 멀어져요. 당장이야 급하니까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결국엔 자기 안 좋은 일 알고 있는 사람 별로 안 반갑거든요.”
이 지점에서 나는 멍해진다. <서초동>은 말하기 불편해서 터부시 하는 이런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이종석 출연 7화 분량을 몽땅 투자했다.
사람이 마냥, 한없이 좋을 때에는 이러저러한 고민상담에 서슴이 없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아,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라거나 “너한테 처음 말하는 건데...”,라든지 ”좀 창피하긴 한데 사실 나 있잖아...“ 와 같은 추임새로 속내를 꺼내 보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어쩐지 그런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홀가분하기는커녕 찝찝하다. ”괜히 말했나?“,”그 얘기 까지는 안 해도 됐었는데...“중얼이며 이불킥을 하고 만다. 세상에 내 안 좋은 면을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드라마의 한 장면을 통해 적지 않은 깨달음을 얻는다. 실수를 비롯한 바람직하지 않은 속내는 (그 말을 안 하면 죽을 정도로 답답하지 않은 이상) 지인들에게 감추는 것이 맞을까? 의도치 않게 내보인 속내들은 화살이 되어 내 가슴에 후회로 꽂힐지 모르니 말이다.
나이 들수록 입이 무거워지는 이유를 조금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