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켜버린 진심은 홀가분하다.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고

by 새이버링

소설에 몰입해 잘 읽었을 때 과거의 나는 주로 “재미있게 읽었다.” 표현했지만 <안녕이라 그랬어>만큼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말이지 심오하게 읽었다. 심연 어딘가를 슬쩍슬쩍 건드리며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것. 이것의 속성을 정확히 알고자 하는 다급한 이끌림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인지감수성으로의 갈증이기도 했다. 나도 잘 모르겠는 내 마음을 들켜버렸을 때 어쩐지 홀가분해지면서 험난한 세상을 잘 버틸 근육이 생긴다. “좋은 예술은 공동체를 제 마음과 대면하게 함으로써 의식의 부패를 막는 ‘약’이라고“ 말한 신형철 평론가님의 처방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먼저, 매우 주관적으로 나를 멈춰 세운 문장들의 공통점은 ‘후회’다.

‘그때 내가 이 집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빗방울처럼)

‘그때라도 팁을 줬더라면.’(숲속 작은 집)

‘그때 대출받아서라도 그 집을 샀어야 했는데.’(좋은 이웃)

‘굳이 진심을 말하지 않았어도 됐는데.’ (이물감)

등등...

나는 돈과 처세가 이기는 후회를 떠올렸다. 그런 후회는 나 자신의 현재를 가난과 외로움으로 더욱 거세게 밀어 넣는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거란 희망은 후회의 반대말일까. 후회들의 행간에 어찌나 공감하면서도 씁쓸했는지, 당연하게 외면했던 안타까움과 공포를 책에서 마주하고 마음속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후회뿐만 아니라 거짓말도 나를 멈춰 세웠다. 신형철 평론가님은 김애란 작가님의 전작 <이중하나는 거짓말>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거짓말은 그 말을 하게 만드는 어떤 마음을 뒤에 거느리는 것이고, 한 인간의 진실은 바로 그런 마음 근처에 있을 것이므로”

그동안 내가 해 온 진실 근처의 수많은 거짓말을 떠올리며 숨겼던 내 진실과 욕망에 이물감을 느꼈다. 나빠서 틀린 게 아니라 몰라서 틀렸던 날들이라 핑계를 대 보지만 인지감수성이 부족했던 날들을 안타까워했다.


[홈파티]를 읽으며 유독 마음이 동요했다. 잘 사는 (것을 티 내는) 사람에게 불운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말할 때 어쩐지 입꼬리가 올라가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잘 사는 (것을 티 내는) 사람이 솔직한 것은 실수인가. 사는 게 참 별로라고, 되는 게 없다고 삶을 비관하는 이에게 요구하지도 않은 위로를 보낸 이는 우위를 선점한 것에 안도할까?(나는 <비행운> 속 삶이 고달픈 주인공들보다 형편이 나은 내 삶에 안도하는 내 심리가 궁금했다.) 입꼬리가 올라간 이는 전투에서 이겼으나 전쟁에서 승리여부는 미지수인 것을. 좀처럼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가 우위를 선점하는 게 싫은 본능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이다.


이 책을 모처럼 (아니, 하필) 끝내주게 멋진 호텔에서 읽었다. 치열한 삶을 사느라 수고했다고 내 언니가 무리해서 플렉스 한 호캉스였다. 걸음을 따라 만나는 지나치게 친절한 인사들과 반듯하게 정돈된 침구, 재료비를 가늠하기도 벅찬 음식을 경험하며 이런 세상(잠시 방문한 another place)에서 나는 어디쯤 서있는 것일까 검열하느라 몹시도 마음이 따가웠다. (고급호텔에서 단 하루 숙박을 할 때 명품 매장에서 사지도 않을 옷을 잠깐 입고 거울 앞에 선 나를 본 듯한 기분이 든다.)



‘무슨 일이 있었어?’라고 정확한 안부를 묻는 일을 잃어가는 세상. SNS나 카톡프사를 보는 것이 안부를 들은 일이 되어버리는 세상. 그런 것들을 묻는 일을 터부시 하지 않기로 다짐하고는 그 다짐을 정말로 지킬 수 있을지 망설였다.


필기도구를 챙기지 못해 줄도 긋지 못했다. 나를 멈춰 세운 문장들에 줄을 긋기 위해 다시 이 책의 첫 장을 펼친다. 나는 이제야 소설을 제대로 읽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