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달리는 할머니를 읽고

편자이씨툰

by 새이버링



읽기 전까지는 제목의 의미를 알기 어려운,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 #편자이씨툰

언제나 씩씩하고 유쾌했던 엄마에게

기억을 서서히 삼키는 병, 알츠하이머가 찾아온다.


작가 엄유진의 어머니인 우애령 여사는 소설가이자 교수, 상담사이자 엄마로, 늘 씩씩하고 유쾌하게 자신의 삶을 일궈왔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이상 징후가 찾아왔다. 기억력이 점점 흐려지고 일상생활마저 어그러지기 시작한 것. 결국 고민 끝에 가족들과 함께 방문한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흔한 이야기라면 여기서부터 분위기는 장중해지고, 비탄에 잠긴 전개가 이어질 터이다. 하지만 우리의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는 다르다. 무거운 병명 앞에서도 겁먹지 않고 오히려 특유의 재치 있는 농담으로 얼어붙은 진료실 분위기를 순식간에 녹여버린다.

* 출처 : 예스24 <https://m.yes24.com/goods/detail/148334038>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만화로 그려내면서 소설가의 산책보다 치열하고 적극적으로, 작가는 엄마를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오로지 순간만을 산다는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기에,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라고 이름을 붙인데 이의가 없다.



만화에서 본 그대로가 현실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대체로 따뜻하게 그려진 가족의 일상이지만 ‘기록’의 특성은 ‘무엇을 남길 것이냐’를 선택하는 일종의 선택적 기억이므로 나는 작가가 일상을 만화로 그리는 일이 고귀하고 진정 아름다운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추잡하고 짜증 나는 일상도 ‘에세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나면 그럭저럭 버틸 만 해지는 것처럼. 그래서 별 것 아닌 일상도 특별하고 우아하게 기록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만화를 이끌고 가는 대부분은 가족 간 나누는 대화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을 사로잡은 놀라운 진실은, 더 우울해질 것 없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유머와 위트를 포기하지 않는 엄마의 태도다.



“네가 무식한 것까지 나한테 책임지라고 하지 마라.”

“인생의 핵심은 저항정신 아니겠니?”

“기억에 걱정까지 통째로 없어져서 괜찮은데?”


기억을 잃어가는 순간까지도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단단할 수 있을까? 노쇠한 부모님을 자주 들러봐야 하는 딸의 고단함에 공감하면서, 부모님을 사랑과 존경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는 딸의 마음씨에 감동한다. 읽다가 한 번씩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을 때, 언젠가는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조금씩 상상해 보다가 마음을 쓸어내린다.



후기를 쓰면서, 아직은 통화버튼 한 번이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내 부모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이,

새삼.


믿을 수 없이 감사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방금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계신지 확인하고는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교촌 허니콤보를 배달로 보내드렸다.

극구 싫다는 엄마에게 꽁돈이 좀 생겼다고 하면서.


맛있게 드시면 좋겠다.

맛있는 것을 사 드릴 수 있어서 기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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