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라도 고민한 적이 있다면
최근에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 단둘이 식사할 일이 있었는데 대화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상대에게 호기심을 갖고 질문했지만 서너 마디 주고받으면 대화가 금세 끊겼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머릿속에서 하도 땀을 뻘뻘 흘려서인지 그날 점심 메뉴도 기억나지 않는다. 오로지 기억나는 것은,
나는 이 사람과 왜 이렇게 대화가 힘들까?
였다.
그 질문과 며칠간 씨름한 덕인지 알고리즘은 나에게 어떤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고, 나는 영상 속 주인공이 쓴 책까지 읽게 되었다. 주인공의 이름은 정흥수, 흥버튼이라고 불리는 아나운서였다.
상대방과 대화가 어려울 때는 자기를 지우라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생각하며 찬찬히 상황을 복기해 보았다. 그날 나의 대화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결국 정답을 알고 난 나는 허탈함에 무릎을 탁 쳤다. 나는 ‘내 정체성’이라는 카드를 손에 꼭 쥔 채로 상대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마치 면접과도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상대는 나보다 한참 후배였고, 나에게 받는 모든 질문이 면접 질문 같았을지도 모른다. 심하면 수집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대화하다 보면 공통점을 하나라도 발견하겠지 싶어 어색함을 못 견디고 질문을 떠올리느라 애를 먹었다. 하지만 그날의 대화가 힘들었던 이유는 내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요즘 재밌게 보는 드라마 있어요?”
“아니요, 저는 티브이를 잘 안 봐요...”
“그럼 퇴근 후 집에 가면 뭐해요?”
(이건 아마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도 하면서 공통점이라도 찾아보려고 무척 애쓴 표현일 것이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요...”
(실패...)
이런 순간을 4-5번 만나면 명치가 뻐근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만약 나를 완벽하게 지우고 100% 상대의 입장에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요즘 재밌게 보는 드라마 있어요?”
“아니요, 저는 티브이를 잘 안 봐요...”
(나를 지운다. 나를 지운다. 나를 지운다. 꼭 퇴근 후에 뭘 하는지, 사생활까지 궁금해하지 말자. 지금 상대는 티브이를 잘 안 본다고 대답했으니 상대의 대답에 호기심을 갖자.)
“원래 티브이 보는 거를 안 좋아해요?”
“아니오. 원래는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티브이 보는 시간이 좀 아깝더라고요.. “
”오...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집중하는 일이 있나 본데요? 뭐 때문에 시간이 아까운 거예요? “
이런 식이었다면 더 나았을까 싶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자기를 없애라는 말은 처음이다. 상대의 대답에서 기분을 파악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일, 상대의 반응에서 나의 상황을 끄집어내지 않도록 자제하고 노력하는 일.... 은 무척 어렵고 집중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책에서는 이런 대화의 기술뿐만 아니라 살면서 마음에 되새기면 도움이 되는 길잡이와 같은 문장들이 많았다. 주어진 역경 속에서도 소신을 갖고 꾸준히 노력한 사람의 성공담 같았다.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흥수님을 응원하면서 나도 성장하고 싶다.
오늘도 책이 나를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