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캠핑을 그만 두지 못하는가?

마이클 이스터 저, <편안함의 습격>을 읽고

by 새이버링

편안함의 습격을 읽으며 내가 떠올린 질문은 이것이다.


어째서 나는 캠핑을 그만 두지 못하는가?

약 10년 전부터 우리 가족은 캠핑을 했다. 야생의 공간에 집을 짓는 일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텐트를 등진 채 여유롭게 찍는 캠퍼의 일상은 보기보다 혹독했다. 벌레에 물리고, 지네의 습격을 겨우 피하고, 피부를 깨끗하게 클렌징하지 못하고, 양치 후 생수로 입을 대강 헹굴 때에도 나에게 늘 질문을 했다.


‘나는 이 불편함을 왜 자꾸 까먹지?’


늘 남편의 주도로 시작하는 캠핑이지만 나도 얼마든지 거부하고 선언할 수 있었다. 절대 안 가겠다고 하면 안 갈 수 있는 캠핑이었다. 하지만 캠핑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말할 때 내 입에는 침이 발려져 있고 눈은 웃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캠핑과의 결별을 선언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이 책을 읽으며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는 캠핑이 주는 불편함을 느끼면서 내 컴포트존(Comfort Zone)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벗어나기를 노력한 것이라고. 낯선 곳에 텐트를 치고, 의자를 펼쳐 앉아, 보고 느끼게 될 미지의 세상은 예측 불가능하다.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갈아타고 배를 타고 태국 끄라비섬에 있는 라일레이에 갔을 때 느꼈던 불편함은 전적으로 의도한 바였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한껏 기대하느라 힘든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매일 자가운전으로 출퇴근하고, 로봇청소기와 건조기와 식세기가 버텨주는 집안일에서 벗어나기를 작정한 것이다. 계속 이렇게 살다 보면 갑자기 할머니가 돼 있을 것 같아서.



불편한 시간은 혼자다. 동료(가족)가 있다고 해도 불편함은 각자 개인의 몫이다. 컴포트존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성가시지만 컴포트존에서 벗어나 느끼는 불편함은 모험이고 성장이며 명상이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는 조깅을 할 때 얼마나 생산적인 사고를 했던가, 출렁이는 배 위에서 먼 하늘의 구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터져 나왔던 웃음은 대체 무엇일까? 의도한 불편함(편안함으로부터 벗어남)은 기어코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 내가 나로 살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지식과 지침을 제공하는 책이 아니라 컴포트존에서 무뎌진 것, 잊어버리고 사는 것, 컴포트존 바깥의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정신적 풍요를 떠올리게(Remind) 해주는 책이다. 마치 내가 지금 살아있는 이유가 내 코로 들어가는 공기 덕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처럼 말이다. 읽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아! 하고 감탄하게 되는 그런 책이다. 편안함은 좋다. 하지만 편안함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일은 더욱 좋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캠핑을 그만두지 못할 것 같다.



'컴포트존을 벗어나 정신과 육체를 한꺼번에 동원해야 하는 새로운 기술들을 학습하는 과정은 우리의 뇌 회로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일으킨다. 놀랍게도 변화는 일부 질병에 대한 회복력을 높여준다.'

'새로움을 심지어 우리의 시간 감각을 늦춘다. 어린 시절에 시간이 더 느리게 느껴졌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어릴 땐 모든 것이 새로웠고,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작은 동그라미 안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내 잠재력이다 하면서,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울타리를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이건...정말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거죠."

'대부분의 현대 미국인에게 흔히 스트레스란, <이놈의 교통체증 때문에 요가 수업에 늦겠어>하는 류의 것이다. 아니면 <옆집이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버나?>하는 스트레스이거나 <이 스프레트시트는 시간이 한정 없이 걸리네> 아니면 <우리 애가 아이비리그 대학에 못 들어가면 우리 집은 끝장이야> 등등 모두 제 1세계적인 스트레스다.'

'요즘 사람 대부분은 자신의 컴포트존을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 우리는 나날이 편안해지는 거쳐와 냉난방이 조절되는 멸균의 장소에서 도전이라고는 일절 없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 과식하며 살고 있다.'

<편안함의 습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