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에 대하여
자존감은 스스로를 높이고 존중하는 것이고, 자존심은 세상에 나가서 남들과 비교하며 느끼는 우월감입니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야. 그 실수를 두 번 다시 안 하는 게 중요해.”
내가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인데, 그 말은 실수한 아이가 당황하지 않고 회복탄력성을 갖도록 격려한다. 나 자신을 내가 존중하고 돌보는 마음. 자존감은 바꿔 말하면 힘든 상황에서 내가 나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느냐가 그 크기를 결정한다.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위와 같이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러질 못했다.
수년 전 누군가에게 했던 말을 후회한다. 잘해보려고 했으나 실수가 되고 말았던 내 행실을 후회한다. 자꾸 떠올라 내 발목을 잡곤 한다. 누군가에게 나는 참 못된 사람이 되어 있겠구나. 가끔 옳은 말로 아이들을 가르칠 때 과거에 내가 했던 실수가 마음 한 구석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다. ‘과거에 이런 실수를 해놓고 내가 옳은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평생토록 그 검열이 내 꼬리에 붙어 다닐 것 같았다. 하지만 <너를 아끼며 살아라.>를 읽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도 찾아왔다.
아니, 세상에 실수를 안 해본 사람도 있을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고 이불 킥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그런 신과 같이 완벽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명언제조전문가들인 쇼펜하우어, 니체, 공자는 완벽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다. 신이 아닌 이상 모두는 실수를 통해 깨달으며 실수를 줄이기 위한 삶의 지침을 만들어 선언했을 것이다. 그게 다 명언이 아니겠는가? 과오는 지나간 실수이고 바로잡을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며 뱉고 간 모래들이 과오를 화석처럼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화석은 내버려 두기로 한다. 화석은 화석일 뿐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없고 끼쳐서도 안 된다. 나는 새로 고치는 사람이어야겠다. 무거운 화석들을 이고 지고서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너를 아끼며 살아라>라는 제목부터 시 그 자체다. 제목이 나에게 말한다. 나 자신을 존중하려면 화석은 내려놓고 가벼운 몸으로 앞으로 걸어 나가라고. 나이가 들 수록 화석들이 줄어들 거라고, 아이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두 번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된다고. 그렇게 조금씩 나은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너는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내가 받은 짧고 강렬한 위로를 전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떠올라 온라인 서점에서 몇 권의 책을 주문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