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필라테스

by 새이버링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아파트 지하에서 요가 매트를 깔고 하는 가벼운 필라테스 말고, 시드니에 잠깐 있을 때 영상을 보고 따라 하던 '스튜디오 필라테스' 말고, 필라테스 전문점(?)에 찾아가 진짜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내 인생 43년을 통틀어 손꼽을 만한 획기적인 결심이었고, 궁지에 몰린 생쥐의 마음이었으며 70세의 나를 위한 보험을 드는 일이었다. 필라테스 레슨비가 생각보다 비쌌기 때문이다.


상담예약을 신청하고 약속한 시간에 필라테스 센터를 방문했다. 원장은 나에게 간단한 경력을 물었다. 이십 대부터 최근 3년 전까지 요가는 했다고 부끄럽게 말했다. 왕년에 몸이 좀 유연하다는 말을 듣던 나였기에 필라테스도 제법 하지 않겠냐는 오만은 이미 마음속에서 버린 지 오래다. 어깨와 허리, 골반 등등 아픈 곳이 하나둘씩 늘어갈 때 이제는 더 이상 이 숙제를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민하는 순간 아픈 부위가 하나 더 늘 뿐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일단 필라테스라는 걸 제대로 시작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시작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왔다고 말이다. 원장님은 편한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내게 딱 달라붙는 5부 팬츠를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나오라고 했다.


그 옷을 입고 나는 특수 장비일 것으로 추정되는 어떤 카메라 앞에 섰다. 엑스레이를 찍는 마음으로 요구하는 동작을 성실하게 취했다. 몇 개의 사진 촬영이 끝나고 원장님은 나를 불렀다. 내 몸의 밸런스가 무너져 있다는 것을, 내 사진 위에 찍힌 좌우 비대칭인 점과 선으로 증명해 보였다. 뚱뚱하고 단정하지 못한 내 몸 선 안으로 무너진 골반과 발목, 좌우 비대칭인 어깨가 드러났다. 나는 이제 병원을 찾은 환자의 마음이 됐다. 등록을 위해 회원원서를 쓰는데 필라테스 수강목적에 체크하는 란이 있었다. 전과는 달리 '체중감량'에 체크하지 않았다. 이곳에 발을 내딛을 때, 체중을 감량하고 싶다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체중은 그저 오르락내리락하는 숫자에 불과하다. 숫자란 본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단위'일 뿐이지 않은가. 나는 과감하게 '체력증진'에 체크했다. 근육이 늘면 오히려 체중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말을 어디에서 들은 기억이 났다.


개인레슨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는 퇴근 직후를 선호했지만 주어진 시간은 화요일 8시 반, 목요일 9시 반이었다. 안 되는 여러 이유는 다 밀어내고 가능한 이유만 생각했다. 시간 탓을 하다가 이제까지 미뤄왔던 것을 떠올려냈다. 이 시간에 할 거였으면 수년 전에 시작해도 됐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더 늦지 않은 결심을 한 나를 칭찬하고 토닥였다. 상담 후 첫 레슨을 받기까지 5일 동안 나는 수시로 '내가 필라테스를 시작하다니! 잘할 수 있겠지?'라는 감탄과 걱정이 떠올랐다. 보통 큰 결심 앞두고 있을 때 수시로 얼굴을 들이미는 걱정을 돌보느라 시작도 하기 전에 기운이 다 빠지곤 했다. 이번에는 그러면 안 된다. 나는 트랜서핑을 시작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야. 시간이 돼서 그곳에 가기만 하면 돼. 내가 준비할 건 아무것도 없어.'


이번에 필라테스 등록을 결심한 가장 큰 계기는 H언니다. 최근 오랜만에 언니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언니가 좀 있다 필라테스를 간다고 했다. 꾸준히 필라테스를 하는 언니를 보며 "나도 필라테스를 하긴 해야겠는데... 언니, 내가 필라테스 시작할 마음을 먹을 수 있게 날 좀 설득해 줘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나에게 퇴근 후 남는 시간에 뭘 하냐고 물었다. 나는 아이들이 없는 약 3시간 동안 책도 보고 글도 쓰고 SNS도 하고 영화도 보는 게 가장 커다란 행복이라고 했다. 그 시간을 필라테스에 내주기 싫다는 못된 표정을 지었다. 언니는 웃으면서 '필라테스하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니 3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면 운동을 하고도 2시간이나 자유롭게 쓸 수 있지 않겠냐'라고 필라테스를 밀어내는 내 의지를 굴복시켰다. 원 스트라이크. 내가 필라테스는 너무 힘들지 않을까 물었을 때 언니는 "힘들지... 아프지... 근데 하고 나면 그렇게 좋아."라고 했다. 힘들 것을 생각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졌는데 언니는 내게 다정하게 말했다.


"그냥 거기를 가. 그리고 한 시간 동안만 네 몸을 거기에 맡겨. 그냥 맡겨버리면 돼."


첫 수업에서 나는 기구에 누운 채로 다리를 허공에 올리고 바닥에 닿지 않게 버티면서, 배 근육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낄 때 언니의 말을 떠올렸다. "그냥 그 시간에 너를 맡겨버려." 그 말을 떠올리니 참을만했다. 내 자아가 자꾸 커지려는 것을 언니의 말이 막아섰다. 힘들다고 생각하는 마음조차도 원장님께 맡겨 버렸다. '아!' 소리를 내기도 했고 갑자기 주저앉아 버리기도 했지만 '나를 맡겨버리자'는 그 말에 기댈 수 있었다. 원장님은 내가 아픈 부위를 정확하게 집어냈고, 아프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근육을 쓰는 동작을 할 때 자꾸 비틀어지는 내 몸을 힘주어 바로 잡아 세워주었다. 그동안 내가 골반을 비튼 상태로 집에서 했던 스트레칭은 모두 다 엉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번째 수업을 하면서 나는 1회 개인 레슨의 비용을 가늠해 보았다. 원장님이 틀어진 내 어깨를 꾹 잡고 눌러줄 때 '내 몸에 집중해 주는 전문가와 이걸 꾸준히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고, 엉덩이 속에 숨겨진 근육을 깨워줄 때 '이걸 계속하려면 비용을 얼마나 투자해야 할까?' 머리 위로 계산기가 떠올랐다. 겨드랑이 뒤에 근육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내 몸 근육 하나 내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몹쓸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다!'라고 선언했다. 최초에 개인레슨 5회, 그룹레슨 5회로 등록하면서 낸 돈이 적지 않았다 (45만 원) 그 돈은 병원비라 생각했다. 필라테스도 보험처리가 되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하다가 가뿐해진 몸으로 집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걸 매주 하다 보면 나 진짜 건강해질 것 같아. 근데, 그럼 얼마야... 주 2회만 해도 한 달에 64만 원... 아이 두 명 한 달 치 영어학원비네. 너는 네 몸에 얼마까지 투자할 수 있니? 계속해볼까? 근데 강사님은 참 좋겠다. 한 시간 동안 나를 케어해 주고 8만 원이나 받다니, 힘들겠지만 멋진 직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