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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Mar 27. 2023

호갱부부

어느 월요일 아침


파리바게트에서 빵 값으로 2만 원 이상 써본 적이 없다. 가끔 식빵이나 소시지빵 두어 개 사는 정도, 그것도 야무지게 M포인트 50% 할인을 받아 사는 편인데, 얼마 전 퇴근한 남편이 가방에서 무수히 많은 빵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애들 간식으로 먹이라고…”


말 끝을 흐리는 건 내 표정이 별로 안 좋다는 뜻이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꺼낸 물건은 캠핑용 식기였다.


“그게 뭐야?”


다소 정색하며 물으니, 2만 원 이상 사면 파리바게트에서 주는 사은품이라고 했다. 그 또한 구하기 힘들었다는 말을 덧붙인다.



나는 얼마 전까지 아이들과 호주 두 달 살기로 큰돈을 까먹고(?) 왔으며, 지금은 육아휴직으로 인해 수입은 없고 소비만 하는 대한민국 주부다. 내 지갑은 ‘가불’할 만한 가치가 있을 때 열린다. 즉 마이너스 통장으로 사는 중이란 뜻. 게다가 최근 아들이 고학년이 되면서 ”이제 캠핑은 힘들겠다.. 유행도 지난 것 같고.. 장비도 좀 팔고해야겠네“라던 남편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남편이 고작 2만 원 가지고 그러냐며, 짹짹대는 나를 도리어 원망한다. 그리고 그 캠핑용 식기가 정말 괜찮은 아이템이고 뭐 하나를 사더라도 좋은 걸 사야 한다, 예전부터 사고 싶었고 잘 쓰면 되지 않냐..영혼까지 끌어서 궁색한 으름장을 놓는다.

잔소리의 끝에 나는 우리 집에 <남편이름+호갱님>이 있다고 비아냥대며 깊은 한숨에 한숨을 더해 쉬었다.



월요일 아침, 아이들 등교 후 베이글이 당긴다. 그날 줄줄이 꺼낸 빵 중에 베이글이 있었던가. 냉동실에 곱게 얼려 둔 베이글을 해동하고 <겉바속촉의 대명사 발뮤다 토스터기>에 구웠다. 노릇노릇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진 베이글을 보니 침이 고인다. 꾸덕한 크림치즈가 빵 위로 사각사각 발린다. 바사삭, 내 입으로 직진한 녀석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응…? 맛있네?“


2만 원 이상 사면 주는 그 사은품이 대체 뭐였나 그제야 생각이 났다. 팬트리에 얌전히 자리 잡은 하얀 상자 뚜껑을 열어 이리저리 살펴본다.



’나쁘지 않군.’


검색창에 ’파리바게트’를 치자마자 이 제품이 <노스피크 시에라컵>이라고 알려준다. 후기를 두어 개 읽은 뒤 얕은 한숨을 쉬고 제자리에 다시 올려 두었다. 남은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발라 한 입 베어문다.


이렇게 오늘, 우리는 #호갱부부 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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