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
서진이네 1편을 시청하며
해외에서 우리나라 음식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에피소드를 담은 ‘서진이네’가 아름다운 멕시코의 ‘바칼라르’ 지방을 배경으로 시작됐다. 1편에서는 국내 최정상급 연예인의 캐스팅 과정(특히 BTS의 뷔)과 멕시코의 가게, 출연자들이 머물 숙소, 메뉴 선정 등 준비과정을 중심으로 다뤘다. 출연자들은 모든 것이 준비된 멕시코에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만 하면 되고, 시청자들은 그들의 유쾌한 일상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방송을 보는 내내 마치 내가 아름다운 멕시코의 바칼라르에서 뷔와 박서준과 정유미의 친구라도 된 것 같아 신이 났다.
출연자들의 움직임, 대화, 독백 등은 제작자의 의도에 맞게 훌륭하게 각색 및 편집되어 인간적이고 소탈한 모습으로 보였다. 출연자 개개인의 과거발언, 미래의 해프닝, 현재의 독백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을 보고 저걸 편집한 사람의 역량이 놀랍다고 생각했다. 전체를 보고 인과관계를 만드는 능력, 얼마나 세심하고 꼼꼼해야 가능할까.
유명한 셰프가 알려주는 레시피, 바칼라르 지역의 특징, 출연자 개개인의 훈훈한 인성과 영어실력 등 정보도 넘치는 데다가 재미까지 있어 몰입하게 되는, 참으로 다채롭고 인간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이게 제작진이 의도한 바일까? 분명한 것은 1편부터 이 프로그램은 내 취향을 저격했고 나는 이 프로그램을 사랑하게 될 것 같았다.
문득 시작만 해도 성공을 담보하는 예능프로그램을 만드는 나영석 PD의 힘이 궁금해졌다. 예능프로그램의 대가, 마법의 손을 가진 그가 기획한 해외촬영, 호화캐스팅 등은 프로그램의 성공수표이며 막대한 비용이 든다. 그 모든 비용을 지원하는 제작사의 호기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궁금해졌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이런 것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ㅡ 초호화 출연진들은 비즈니스 좌석을 타고 멕시코에 갔겠지?
ㅡ 저들이 묵는 숙소에는 출연진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게 온갖 것들이 구비되어 있겠지?
ㅡ 저 식당에는 정말 출연진 외에는 없을까? 온갖 설거지들과 더러워진 부엌 청소를 전부 최정상급 연예인들에게 시키기는 않겠지?
ㅡ 출연진들을 따라 간 코디들이 식당 안에서도 수시로 헤어나 메이크업을 섬세하게 체크하고 있겠지?
굳이 카메라 뒤의 장면들이 궁금했다. 재미로 가볍게 시청하면 될 것을 너무 진지했던 탓일까. 방송이 노출하지 않는 모든 사실과 제작비의 출처가 궁금했다. 막대한 편집을 거쳐 시청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과정을 머리에 그려보면서. 뷔의 억양이 어색하지 않게, 이서진의 꼰대스러움이 세련되게, 정유미의 서투름이 귀엽게, 박서준의 손놀림 하나하나가 섹시하게, 최우식의 가벼움이 인간적으로 비치도록 제작진은 거듭된 회의를 거친 뒤 각색했을 것이다. 식당에서 일하는 모습이 땀과 음식냄새에 절어 후줄근해 보이지 않게 스타일리스트가 쉼 없이 거들고 있을 것이다. 가게에 관해 묻거나 음식을 먹으러 들어오는 손님들도 일부 연출된 사람들인지 모를 일이었다. 틈을 허락하지 않고 쉼 없이 떠오르는 자막의 위치, 폰트, 덧입혀진 색상과 굵기 등은 시청자의 몰입을 거들었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을 제작진과 보조인력들은 영상에 등장하지 않는다. 카메라 뒤에 모든 의도들은 철저히 가려진 채, 오로지 시청자는 서진이네 멤버의 한 사람으로 최고의 대우를 받을 뿐이다. 제작자의 의도 한 조각 한 조각이 퍼즐처럼 완성된다. 거드는 이들은 오로지 시청자의 만족을 극대화하는데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시청자는 이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자이다. 시청자는 '왕'이다.
‘서진이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시청자가 ‘왕’인 프로그램은 많다. '왕'의 만족을 위해 노력하는 제작자와 출연진, 편집자나 스타일리스트, 그리고 이들의 인건비와 제작비를 투자하는 사람들을 하이라키(Hierarchy)에 올려본다. 하이라키의 최상단에 있는 이는 누구일까. 누가 시청자들을 왕의 자리에 올려놓고 가장 수혜를 보는가. 그것은 아마 돈을 대는 사람들일 것이다. 광고회사와 제작사의 대표자들. 10억을 투자해서 100억을 거둬들일 보이지 않는 큰 손들. 이들은 콘텐츠를 지배하는 사람들이고 콘텐츠는 세상을 지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라키의 가장 낮은 단계에는 왕의 자리에 올라선 시청자들이 있다.
그다음으로 힘 있는 사람은 나영석 PD이다. 그는 비록 제작사로부터 녹을 받아 프로그램을 제작하겠지만 위에서 의뢰하는 건 그저 ‘재미있고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그래서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이다. 그러므로 프로그램의 모든 의도는 나영석 PD로부터 나온다. 우리처럼 낮은 단계의 평범한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힐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보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될 테니까. 궁극적으로는 출연자들을 동경하고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출연자들이 입는 옷, 헤어스타일과 마시는 맥주, 요리할 때 쓰는 프라이팬 등등. 화면에 비친 모든 장면들은 시청자들의 관심사에 오를 것이다. 인터넷 포털에는 ‘서진이네 박서준룩’, ‘서진이네 프라이팬’등 갖가지 게시물이 올라온다. 나영석 PD가 설계한 의도이고 그 의도대로 모든 제작진은 움직인다. 그는 보이는 손이다. 그의 의도가 곧 방송이다.
편집자를 포함한 제작진들, 출연진들, 스타일리스트 등 프로그램을 위해 수고하는 많은 이들은 제작에 관여하지만 본연의 직업에 충실한 사람들일 뿐이다. 편집자는 나영석 PD의 의도대로 편집해서 검사를 받을 것이고, 스타일리스트는 스크린 속 박서준의 헤어스타일이 섹시하고 훈훈하게 보이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능프로그램 '서진이네'가 의도하는 바는 보이지 않는 힘과 보이는 힘, 두 상위 계층으로부터 나온다.
유튜브를 보며 크는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시청자가 있다. 유튜브의 시청자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양하다. 간혹 '의도'를 아는 이들은 콘텐츠를 걸러보거나 혹은 아예 시청하지 않는다. 가끔 그런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인다. 가볍게 즐기면 되는 걸 뭐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며 세상을 피곤하게 사는지 비난받기도 한다. 가볍게 즐기면 좋은데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의식은 재미를 동반해 가볍게 투입된 자극에 깊숙한 지배를 받는다.
왕의 자리에서 시청자는 무의식 중에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ㅡ 핫도그랑 함께 마시는 저 맥주 기가 막힌데?
ㅡ 정유미 머리에 쓴 저 헤어밴드 어디 거지?
ㅡ 내 마일리지로 멕시코 직항 갈 수 있나?
ㅡ 뷔가 쓰는 저 말투, 억양 좀 끌리는데?
ㅡ 이서준이 입은 티셔츠 어디 거지?
ㅡ 오늘 저녁 김밥 좀 싸볼까?
콘텐츠 앞에서 왕이 된 우리는 프로그램이 끝나면 말단 소비자가 된다. 소비자는 '왕'일까? 소비를 위한 돈은 어떻게 마련되었나. 상사의 눈치를 견뎌가며 받은 월급, 학부모에게 쩔쩔매며 받은 월급, 아침에 눈뜨기 싫은 것을 억지로 일어나 아이들을 겨우 학교에 보내고 출근한 회사에서 노동을 대가로 받은 돈. 그 돈에 대해 우리는 눈을 감는다. 재벌의 돈이나, 고액연봉의 야구선수의 돈이나, 우리의 월급은 그냥 '돈'이니까.
서진이네의 모든 장면은 시청자의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 대화방식 등에 티끌만큼씩 영향을 미친다. 시청 횟수가 늘수록 티끌은 먼지가 되고 모래가 된다. 점점 커지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어떤 선택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지금 스마트폰을 꺼내어 뭘 볼지, 오늘 무슨 옷을 입을지, 지금 앉아서 쉴지 나가서 걸을지 등과 같은 선택말이다. 나아가 어떤 사고와 지식으로 우리의 생각을 완성할지도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이미 부모세대가 되었고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성인이다. 우리는 과거의 수없이 많은 선택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보고, 읽고, 체험한 모든 것들의 결과물이다. 주변에 잘 사는 다른 어른들은 어떤 것을 보고, 읽고, 체험했기에 하이라키의 상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일까.
이제 결론은 이 생각에 가 닿는다.
나는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매일, 매 순간 자식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내 자식이 의사가 되면 좋을까, 외교관이 되면 좋을까, 교수가 될까.. 세상에 무수히 많은 직업들. 선택할 수 있는 많은 직업들은 깡그리 치우고 나는 생각한다. 직업의 종류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하이라키의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자식은 하이라키의 하위에 있어도 행복하면 좋겠어'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가 얼마나 될까. 설령 그렇게 말하더라도 말끝이 흐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자본주의의 괴물이 된 엄마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냉정하게 내 자식은 하이라키의 상위계층이 되기를 바란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어두운 저녁 하교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면 저들의 미래가 안쓰럽고 짠하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분투해서 살아남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
그러기 위해 지금 아이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무엇을 교육할지 당장 고민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