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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Apr 17. 2023

도움을 청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

함께 있어주는 사람


올해 8살이 된 딸아이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았다. 키즈카페라니. 정말 오랜만이다. 올해 초1이 된 언니, 오빠들에게 키즈카페가 유치할 줄 알았더니 기우였다. 쉼 없이 뛰어다니며 키즈카페를 점령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생일의 주인공은 남자아이다. 유치원 때부터 딸과 결혼까지 약속할 만큼 각별한 사이다. 둘은 7살 때부터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을 만큼 사이가 좋다. 그런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남자아이들 틈에서 딸아이가 시무룩해졌다. “놀 친구가 없어..” 아무래도 같이 뛰어다니기는 싫은 모양이다. 오빠가 있어서인지 남자아이들과도 거부감 없이 잘 노는 딸인데. 결혼까지 약속한 오늘의 주인공이 노느라 정신이 없어 우리 딸을 등한시하는 걸 보니 이 결혼은 반대해야겠군. 하며 허허 웃었다.




이제 막 초1 학부모가 된 엄마들은 고민이 많다. 그중 제일은 친구관계다. 그 밖에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다. 키즈카페의 한쪽 테이블에서 엄마들끼리 지난 3월 한 달 동안의 에피소드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얼굴을 잔뜩 찌푸린 딸아이가 엉엉 울며 걸어온다. 엄마들이 일제히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늘 생일인 주인공 친구의 엄마는 안절부절못하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아들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아이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는 앉은자리에서 내 쪽으로 걸어오는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내 옆에 다가왔을 때 나지막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딸아이는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일단 아프다고 하지 않는 걸 보니 다친 건 아니다. 손을 꼭 잡으니 입을 열었다.


“내가 낚시놀이를 하고 싶은데 아무도 나랑 놀아주지 않아서 속상해”


그럴 만도 했다. 남자아이들은 땀이 범벅이 되어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 말을 들은 친구엄마가 말했다.


“아줌마가 OO한테 말해서 같이 놀아달라고 말할까?”


나는 그 말을 듣고 아이의 엄마에게 괜찮다고 눈치를 줬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엄마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니?”

“나는 유튜브로 뭐 볼래..”

“그럼 집에 가서 유튜브 보자. “

“아니, 그건 싫어..”

“그럼 네가 한 번 더 친구들에게 부탁해 볼래?”


고개를 젓는 아이를 내 옆에 잠시 앉혔다. 간식을 좀 먹이고 기분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 뒤 딸아이가 나에게 속삭였다.


“엄마가 같이 가줘..”

“그래, 알았어. “


그 말을 듣고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낚시놀이 앞에 왔을 때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같이 하겠다고 몰려왔다. 함께 노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엄마들이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정말 차분하게 대처하시네요.”


생일파티날 처음 만났던 엄마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왜냐고 물으니, 아이가 울면 보통은 다른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아이를 이해시키려고 이런저런 말로 설득할 텐데 그러지 않는 내 모습이 차분해 보였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말했다.


“차분하긴요, 그냥 아이가 도움을 청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에요.”


다친 게 아니라면 되도록이면 아이들이 도움을 청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다. 무엇 때문에 곤란해진 것인지 말로 표현할 때까지 말이다. 물론 내 쪽에서 먼저 관여할 때도 있지만 10번 중 5번 이상은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간혹 울거나 짜증 내는 아이에게 이유를 스무고개처럼 캐묻는 부모가 있다. 돕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감정을 말로 표현하게 한 뒤 도움을 청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스스로의 마음을 읽고 해결책을 떠올려내는 행위가 아이들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끼리는 어른들은 셈하기 어려운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갈등이 있다. 친구관계. 학교에 가면 선생님도 부모도 일일이 관여할 수 없다. 유치원 때야 선생님이 아이들의 감정까지 읽어주려 애쓰지만 초등학교는 냉정하다. 그런데 학교 밖에서조차 그럴 때마다 어른들이 해결해 주면 아이는 스스로 해결방법을 생각할 기회를 부모에게 뺏긴다. 만약 친구의 엄마가 친구에게 함께 놀아주라고 부탁하러 갔다면 이후로도 친구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어른이 도와주는 것이 해결방법이라고 학습할 우려가 있다. 대신 아이가 낚시놀이를 하고 싶은데 혼자 가는 게 멋쩍어 함께 가자고 부탁한다면? 아이가 도움을 청한 것이니 동행해 줄 수는 있다. 마음을 알아주는 엄마가 함께여서 친구들이 없어도 주눅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함께 다시 놀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할까? ‘내가 혼자 있으니 친구들이 함께 놀아주는구나 ‘ 혹은 ‘나도 친구들이 하는 것을 같이 하며 놀아볼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음에는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울지는 않을 것 같다. 

부모는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아이가 겪게 될 백만 스물 한가지의 이슈를 다 해결해주지 못할 바에야 상처받은 영혼이 쉴 편안한 의자라도 되어주는 편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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