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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May 01. 2023

8살의 의무

친구에게 허풍 떤 것에 대하여 해명할 의무

그것도 재미있고 즐겁게.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규칙, 승패, 페어플레이같이 세상을 살 때 꼭 필요한 개념들을 배우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과 인간관계 맺는 법을 연습한다. 특히 나의 주장을 펴고 남의 주장을 듣는 법,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감정을 나누는 법 등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깨우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을 탐색하는 일도 직접 만지고 냄새 맡고 소리를 듣고 피부로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뭔가 조립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현실 속 문제 해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서 놀이를 빼앗는다는 건 생존 기술을 빼앗는 것과 같다. 아이들은 놀면서 수없이 지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이런 것을 충분히 경험하지 않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서 패배하고 좌절하면 과연 그것을 부드럽게 넘어설 수 있을까. 각종 장애물을 뛰어넘고 격파하며 앞으로 전진하는 슈퍼 마리오처럼, 인생이라는 거대한 현실 놀이터에서 내 앞으로 뚝뚝 떨어지는 힘든 일들을 해치고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
이진민_아이라는 숲


내 아이가 다른 아이와 함께 놀 때, 무엇을 하는지만 확인하고 그다음은 외면하는 편이다. 언성이 조금 높아져도. 둘 중 한 명이 질문했는데 답이 없어도. 한숨을 쉬어도. 나는 외면한다. 때때로 나를 바라보며 '뭐라도 좀 해서 나를 도와줘요..'라고 말하는 듯한 아이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것은 ‘대신 말해달라는 것’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외면하는 경우가 있다. 솔직히 외면하는 척하면서 사실 귀는 반쯤 열려있다.  내가 개입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하기 위해서. 그러나 대부분은 개입할 때가 아니다. 누군가 다치거나 큰 싸움이 날 것 같지 않고서는 말이다.


한 번은 딸아이가 좋아하는 친구집에 놀러 갔다. 동성이 아닌데도 늘 사이좋게 지내는 둘도 없는 친구다. 딸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친구에게 물었다.

"너 저번에 포켓몬 띠부씰 5천 장 있다고 했잖아, 보여줘 봐. 진짜야?"

그 말을 듣자 친구는 동공이 흔들렸고 대답하기도 전에 동생(친구 엄마)이 바로 개입했다.

"정말? 우리 아들이 그랬어? 아마 너한테 엄청 잘 보이고 싶었나 보........"


그 순간 나는 동생의 팔뚝을 잡아당기며 복화술로 속삭였다.

'아들이 대답하자....'


내 눈치에 끄덕한 동생은 잠자코 있었다. 딸아이는 친구에게 재차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아 그거.. 실은.. 그거 내가 뻥친 거였어. 내가 거짓말한 거 미안해.”


딸아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그래도 진짜인 줄 알았다고 했다. 친구도 부끄러운 듯 웃었다. 둘은 깔깔깔 웃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깃집 사장님 메뉴판을 만들러 방으로 사라졌다.


“언니, 나 정말 몰랐네. 우리 아들이 직접 저렇게 말할 줄은, 역시 언니는 동네 오은영이야 하하.. "


육아로 자만할 처지는 못 된다. 내 새끼 두 명도 감당이 안 되는 순간이 넘쳐난다. 그러나 늘 내 말에 존중해 주고, 아이에 대한 고민을 나에게 묻는 동생이라 몇 마디 거들었다. 아들도 대답할 수 있다고. 정확히 말하면 <친구에게 허풍 떤 것에 대해 해명할 의무>가 있다고. 그래야 그 행동이 잘못된 행동인지 스스로 의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기회마저 엄마가 빼앗으면 아이는 언제 ‘관계’와 ‘소통’에 대해 학습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살면서 아이의 잘못에 건건히 해명하는 엄마는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건 제앞가림 못하는 자식으로 키우는 일이야.라고 말하며 덧붙이면서.


“근데 훈육은 언제나 어려워, 이제 좀 알 것 같으면 더 이상 내 옆에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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