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한 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나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3월이다. 2월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시간 감각도 요일 감각도 없었다. 아, 계절 감각도 추가다. 오랜만에 패딩을 입고 집을 나섰는데, 나만 겨울이고 사람들은 가벼운 봄이더라.
소금이가 50일이 지나고 나니 신생아 티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잠이다. 그동안은 소금이가 침대에 눕지 않아서 품에 안고 재울 수밖에 없었다. 제법 비싸게 주고 아기 침대를 샀는데, 웬걸, 소금이는 더 비싼 인간 침대를 바랄 줄이야. 어쩔 도리 없이 내가 침대가 되어 소금이를 가슴 위에 얹고 소파 생활을 몇 주간해 왔다. 허허.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소파에서의 밤과 새벽은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요즘 소금이는 밤에 본인 침대에서 자고, 한 번 잠들면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깊게 잔다. 덕분에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내게 여유가 생겼다. (그러니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거다!)
소금이가 태어나기 전에 분명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각오를 다졌는데, 내 상상력이 빈약했다 싶을 정도로 육아의 세계는 늘 새롭고 신선한 충격의 연속이다. 정답이 없는 과제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며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나를 몰아세운다. 내가 얼마나 인내할 수 있는지 시험을 당하는 기분이랄까. 책에서 배운 대로, 영상에서 본 성공 사례대로 해봐도 소금이에게 통하지 않을 땐 답답하고 초조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마냥 견디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임신은 불안감과의 사투였다면, 육아는 좌절감과의 사투다.
임신 중에 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진짜 한동안은 잠을 못 잔대.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최대 소원이 길게 통잠을 자는 거라더라."
"그래? 잠을 못 자면 진짜 힘들긴 하겠다."
"엄청 예민해지겠지. 그래서 신혼 때는 싸우지 않았던 부부도 크게 싸우게 된다던데. 우리도 그러면 어떡하지?"
"그러는 게 무슨 뜻이야?"
"막 서로에게 소리 지르며 싸우고. 문 쾅 닫고 각방 쓰거나 집 나가고. 서로 본 체 만 체 냉랭하게 대하고."
"갈등이나 다툼이 없을 수는 없겠지. 그런데 너무 걱정 마. 우리는 싸우더라도 아마 교양 있게 싸울 거야."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교양 있게 싸우다니(웃음)"
예상치 못한 남편의 답에 깔깔 웃으며 즐겁게 마무리했던 대화의 기억. 우리 부부의 모습을 파국으로 상상하던 나를 남편은 특유의 유머로 가볍게 구원해 주었다. 실제로 소금이가 태어난 후 우리는,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때마다 남편의 말대로 교양 있게 다퉜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갈등은 수시로 생겼고 다툼은 잔잔하게 끝났다. 표면 상으로는 그렇다. 실제로는 마치 빙하의 보이는 부분은 작지만 그 이면은 거대한 것처럼, 남편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나는 요동치며 울렁거리는 거친 감정과 생각들을 진정시키고 교양 있게 대화로 해결해 나가는 게 몹시 힘들고 어려웠다.
마음이 소란할 땐 글쓰기 만한 게 없다. 부족한 수면과 소파 붙박이 생활로 나의 자율성을 위협받을 때, 각종 이론과 전략이 소금이에게 통하지 않아 유능감이 떨어질 때, 남편과의 크고 작은 갈등으로 관계성이 흔들릴 때, 나를 버티게 한 건 글쓰기였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는 더 악착같이 만년필을 들고 일기장에 진솔하게 생각과 감정을 쏟아냈다. 그러다가 문득, 출산 전에 이러한 것들을 미리 좀 알고 마음의 준비와 대비를 해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부분이 내 일기 속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건 내 일기장에만 담아두기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불안한 임신기를 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전해준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는 게 몹시 반갑고 기쁘다. 나의 쪼그라든 자율성과 유능감을 꼬깃꼬깃 펼쳐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