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 이후의 기록 1

일기 쓰기를 관두었다.

by 주은

가장 먼저 중단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나의 오래된 습관인 일기 쓰기였다. 기록하는 삶을 지향한다면서 어떻게 일기 쓰기를 중단할 수 있지- 의아하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일기가 내 삶에서 수행해 온 기능이다. 나는 아주 오랜 기간 일기를 써왔다. 성인이 된 직후의 불안정한 시기부터 시기와 질투, 불안함과 초조함, 사랑과 이별, 그리고 육아를 하는 지금까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날 압도할 때마다, 나는 종이 위에 그것을 마구 쏟아냈다. 사각거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써 내려가다 보면 엉킨 마음이 조금은 풀렸고 때로는 깊은 성찰에 닿기도 했다. 쓰는 행위는 분명 나를 여러 번 구원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 남편에 대한 사소한 불평불만, 나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 이런 것들을 일기장에 풀어내고 있었다. 거북목을 한 채 무언가에 홀린 듯 거침없이 써 내려가는 나를 보며 남편이 물었다.


- 도대체 그 일기장에는 무슨 내용을 적어?

- 응?

- 항상 뭔가를 열심히 적길래.

- 그냥 이것저것. 일상? 내 생각과 감정?

- 궁금하다. 나중에 나도 읽어봐도 돼?

- 아니????????????!! 절대 안 돼. 내가 죽으면 내 일기장들은 다 불태워줘.

- 그 정도야? 왜????

- 안 돼. 절대로. 절대로 안 돼.


남편은 나의 격한 반응에 굉장히 당황했다. 나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내 일기를 읽을 수도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서재 한 편에 꽂힌, 대학 시절부터 써온 일기장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차마 버리지도 다시 읽지도 못하는, 계륵 같은 존재들.


다시 읽을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내가 일기장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써왔기 때문이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그 시기에 겪었던 나의 밑바닥인 모습, 어두운 감정이 생생하게 재생된다. 몇 줄만 읽어도 불쾌함과 찝찝함이 순식간에 탁 달라붙는다.


나는 왜 다시 읽지도 못하는 기록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왜 그리 어두운 나의 모습만 이토록 충실히 기록해 두었을까. 분명 그 시절에도 내가 밝게 빛나는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일기장 속에 기록된 나는 늘 화가 나 있거나 슬퍼하고 있다. 과거의 내가 참 원망스러웠다. 미래의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니.


그날 이후, 기록하는 행위에 대한 고찰이 시작되었다. 내 역사가 담긴 일기장을 정작 주인인 내가 불편해한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었다. 내 기록에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것. 나를 비난하고 자책하며 이것밖에 안 되는 나를 증명하는 기록 대신, 나의 성장과 변화를 믿어주는 태도가 담긴 기록이 필요했다.


일기를 재정의했다. 앞으로의 일기는 쓰는 것보다 다시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 미래의 나를 배려하여 기록을 디톡스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그날의 의미가 다정하게 남아 있는 기록이 되도록, 내 안의 좋은 것들을 더 자주 꺼내 쓰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문장을 남기기로 했다. 그동안 정성껏 채워온 감정 쓰레기통은 이제 과거 속에 남겨두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도 바꾸었다. 쏟아내듯 쓰는 글 대신 몸을 움직이는 걸 선택했다. 힘들 땐 그냥 앉거나 누운 자세에서 스트레칭만 해도 훨씬 나아지는 기분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나아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기로. 내가 사랑하는 ‘쓰는 행위’를 타인을 비난하거나 불평을 쌓아두는 데 소모하는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니까.


기록의 방향을 바꾸고 나니, 하루를 마무리할 때 뇌는 자연스럽게 ‘오늘 좋았던 일’을 먼저 떠올리기 시작했다. 쉽게 기억나지 않는 날에는 어제의 내가 남겨둔 다정한 격려를 읽는다. 나의 흔들림과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지친 나를 알아주며 토닥여주는 일. 그건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기 쓰기의 방향 하나를 살짝 틀었을 뿐인데, 새로운 설렘이 차올랐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일이 진심으로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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