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 하시겠습니까? 네.

by 주은

매일 반복되는 육아 일상이 어느 순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육아를 하고 있는 이 시간이 무용하게 다가왔다. 육아하는 내 모습이 참 별 볼 일 없고 가치 없이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자꾸만 스스로가 작아지고 위축되었다. 갑자기 내가 왜 이러지?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발견한 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나'였다. "사회적 비교는 행복감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육아를 시작하기 전부터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경계하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 다짐한 대로 결심한 대로 흘러가던가. 나에게도 결국 이런 시기가 찾아온 것일 뿐.


자기결정성 이론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타고난 심리욕구인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이 있다. 이러한 기본심리욕구들이 충족되었다고 스스로 지각해야 삶의 만족이 높아진다고 제시한다. 이 이론을 토대로 나의 삶을 비추어 보면 분명 나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주어져 있었다.


자율성부터 이야기해 보자면, 일단 내가 육아휴직 상태라는 점. 출퇴근이 없고 일을 하지 않으니 하루가 분주하지 않다. 아이가 11개월이라 낮잠을 고정적으로 두 번 자는데, 이 시간을 이용하면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또 아직 아이가 걸어 다니지 못하기에 유아차에 태워서 내가 원하는 곳을 원하는 속도로 샥샥 이동할 수도 있다.

그리고 유능감? 난 미각이 예민하고 손이 빠른 편이라 아이 식사 준비를 제법 잘 해낸다. 자기 주도식을 하고 있기에 아이가 스스로 집어 먹을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해주고 있다. 새로운 식재료를 만지고 다듬고 유튜브나 책을 보며 그 음식을 구현해 냈을 때의 성취감.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만들고 정리하고 이 복잡한 일련의 과정을 착착 해내는 내 모습에 감탄하는 친정 엄마와 남편을 봤을 때의 으쓱한 느낌. 내가 만든 음식을 아이가 양손에 가득 쥐고 터질 듯한 볼이 오물오물 움직이는 걸 보면,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충분히 느껴진다.

나에게 주요한 의미가 되어주는 타인들과의 관계성이야 말할 것도 없다. 언제나 다정하게 날 지지하고 격려하는 남편, 힘들다고 하면 언제든 달려오는 부모님, 특별한 일 없이 전화해도 아무 말 대잔치를 할 수 있는 소수의 친구들까지.


내 주변에 이렇게 많은 긍정적인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렇게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을까. 결국 그 여백의 시간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핸드폰, 정확히는 핸드폰 속 밝게 빛나고 있는 sns 때문이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sns에 접속하면 알고리즘은 내가 관심 있어할 만한 주제를 자꾸 보여준다. 화면 속에는 완벽하고 우아한 육아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심지어 이걸 촬영해서 편집해서 올리기까지 한다), n개월 아기는 이런 걸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가 이런 자극을 꼭 주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들, 이런 육아템을 활용하면 더 쉽고 편하게 육아할 수 있는데 아직도 이걸 모르냐는 식의 광고들, 홍보물들. 무방비 상태로 그러한 정보들을 보다 보면 느껴지는 감정은 초조함과 불안함이었다. 내가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확신은 흐려졌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육아 일상이 당연하게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나 스스로 인지했다면 정말 멋진 결말이었겠지만, 우습게도 나를 벗어나게 한 것도 또 다른 비교였다.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얼굴을 익혔던 엄마에게 용기 내어 연락처를 물었고. 연락을 주고받다 언니 동생하며 친해지고, 함께 문화센터 수업을 등록하며 육아 동지로 거듭난, 나는 이 언니와의 비교를 통해 다시 힘을 얻었다.

언니의 집에 초대받아 놀러 갔을 때, 여러 의미로 당황스럽고 놀라웠다. 손님은 나인데,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기보다는 본인 아이의 작은 부름에도 곧바로 응답하고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책을 읽어주는 모습, 그리고 자신 또한 식탁이나 소파 곳곳에 읽을 책을 배치해 둔 모습이 신기했다. 물어보니, 온라인 독서 모임을 하고 있다고, 독서모임은 sns에서 구한 거냐 했더니 놀랍게도 자신은 sns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youtube에서 구독하던 채널이 참가원을 모집하길래 들어가게 되었고 그게 벌써 4년째라고. 강제성도 없고 자신이 읽은 책을 인증하면 되는 시스템이라 좋다고, 자신에게 약간의 강제성을 설정해 두니 틈틈이 고전 문학을 읽게 된다고.

집에 와서도 언니와의 대화가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언니의 단단한 내면과 느리지만 충만한 일상이 부러웠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잘 알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둔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무엇보다 멋있었던 건 현재 자신의 삶이 충분히 흡족하다는 그 고백.


참 재밌게도 언니와의 비교를 통해서는 내 안의 뭔가 바뀌고 싶다, 해보고 싶다는 에너지가 채워졌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다음 날 바로 sns 계정을 로그아웃했다. sns를 탓하는 게 전혀 아니다. 말했지만 사회적 비교가 독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맥락에 따라서는 약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내 계정의 알고리즘은 나를 자꾸만 심리적으로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에게는 독이다. 나를 해롭게 하는 환경은 내가 제거할 수 있으니, 벗어나는 게 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라고 확신했다.


내가 건강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SNS 계정을 로그아웃 한지 벌써 3주가 되어간다. 약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에게 생긴 변화들을 참 많다. 바로 전에 올린 브런치 글이 내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활력이 넘치고 일상의 충만함을 느끼며 아이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놀라운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어서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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