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 폴리오의 <안개>로 시작된 매우 영화적인 영화

박찬욱 감독 <헤어질 결심> GV

by 소행성 쌔비Savvy


명필름아트센터 개관 1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GV가 진행되었다. 행사 소식을 보고 꼭 보고 싶다, 마침 우리 부부 결혼기념일이니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심재명 대표님을 졸랐다. 그리고 보게 된 것이다. 보령에서 파주까지 3시간, 우린 달려왔다. 처음 여기저기 둘러본 명필름아트센터는 30년 동안 명필름이 제작한 영화 아카이브이며 동시에 영화 마니아들이 혹할만한 문화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소리를 입체적으로 듣고 느낄 수 있는 돌비 에트모스 시스템을 사용해 온몸이 소리를 감각하게 하는 극장에 감동했다. 영화 사운드에 돌비 에트모스를 사용한 <헤어질 결심>을 명필름아트센터 극장에서 보는 것은 그래서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관객과 같이 영화를 관람한 박찬욱 감독은 영화 상영 후 GV무대에 올랐다. 사회는 심재명 대표가 했다. 아래는 주요 질문과 박찬욱 감독의 답변이다. 내용이 좋아 옮긴다. 심대표님의 질문은 훨씬 깊고 품위 있었지만 내가 간단히 옮겼다.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이야기는 소품처럼 간단해도 영화적 요소가 충실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를테면 시네마틱 영화, 영화적 영화로 간단한 이야기와 몇 마디 말과 단정한 편집으로 이루어진, 그래서 영화 이외의 이념을 주장하지 않는 그런 영화 말이다.


당시 나는 향수병에 걸려 있었다. 극 중에서 대사로도 나오는 트윈 폴리오가 부른 안개를 듣고 놀랐고 이 노래를 남녀 버전으로 한, 이 노래가 어울리는 영화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헤어질 결심>은 노래가 먼저다.


그리고 정서경 작가에게 지독한 사랑을 보는 시선에 대해, 사랑 이야기로 각본을 쓰자고 했다. 처음엔 설득이 안 되었다. 그래서 박쥐도 로맨스 영화라고 하며 설득했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외모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영화의 캐스팅에 대해 말해 달라.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외모라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빼어나게 이쁜 것만 뜻하진 않는다. 살아있는 감동을 가진 배우가 있고 아름답기만 한 배우도 있다. 평상시 배우의 얼굴 걸음걸이 손짓 등에 담겨있는 것을 본다. 이 관찰이 캐스팅으로 이어진다.


정서경 작가는 영화 <색, 계>를 보고 언젠가는 탕웨이를 캐스팅해 영화를 만들자고 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탕웨이 캐스팅을 전제로 하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상대역을 고민했다. 형사지만 슈트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쫓아다닐 일이 많으니 운동화를 신는다. 그러나 튀지 않는 검은 운동화여야 한다. 주머니가 많아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다니고 그 물건 중엔 청결 관련 제품이 많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권총은 없다. 박해일을 떠올리고 쓰자고 했다. 그래서 이름도 박해일의 ‘해’를 넣어 해준으로 했다. 박해일 배우는 늙어버린 얼굴까지 연기해 냈다. 촬영 당시 박해일보다 지금 박해일이 더 젊다.


카메오처럼 등장한 유태오는 이정현 배우가 골랐다. 물망에 오른 배우들 사진을 보고 이정현 배우에게 이주임 역을 고르라 하자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유태오 배우를 선택했다. ‘하악씨’로 유명한 최대훈 배우는 매우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작은 역이지만 해보겠냐 제안했고 그가 해주었다.


*여성 중심의 서사를 많이 다루는데 이유가 있나?


시작은 <친절한 금자씨>다. JSA에서 소피 역의 이영애에게 최상의 기회를 못준 것 같았다. 복수 3부작의 마무리는 여자로 할 생각이었고 그 주인공으로 이영애를 캐스팅했다. 무엇보다 외동딸을 키우며 그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여성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영화에 스미는 것이다.


*결말을 그렇게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비슷한 결말, 묻혀서 시간에 의해 사라지는 결말은 내 단편에서 시작했다. 단편에선 장소가 산이었고 여기선 바다다. 사라져야 하고, 직접적인 위해 없이 기다리며 죽는다. 즉, 아무것도 안 하며 죽는 것이 중요했다. 이것은 해준에겐 매우 잔인한 결말이다. 존재가 알 수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해준은 지옥 속에 살라고 웅변한다. 정서경과 나는 결말을 쓰며 이 각본이 헛수고가 아님을 알았다.


*흔치 않게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이다. 의도적이었나?


아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묘사했을 뿐이다. 나는 스토리보드를 매우 자세하게 만든다. 자세한 스토리보드를 스텝에게 숙지시키고 현장에서 나는 가볍게 놀듯 배우들 긴장을 풀어준다. 연기의 스토리보드라 할 수 있는 각본을 두고 얘기도 충분히 나눈다. 이를테면 탕웨이가 안 나오는 부분도 탕웨이가 알도록 하고, 영화에선 보이지 않는 그 인물의 배경도 설명한다. 내 생각에 비판적 의견이 있다면 설득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눠 설득시키거나 내가 설득당할 때까지 이야기한다. 이 과정을 지나야 자연스럽다. 이 영화도 그랬고 그 결과가 15세 관람가였다.


*관객 질문; 참신성을 어떻게 준비하나?


그저 다르기 위해 달라선 안 되고 영화의 본질에서 새롭고 독창적이어야 한다. 매 순간의 쇼트를 어떻게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면 독창적이 되더라. 모든 이야기는 독자적인 세계다. 순간순간 장면을 정확하게 표현하겠다 생각하고 표현한다. 정확하다는 것은 예술의 적인 것 같지만 예술은 정확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태도다.


요즘은 재즈를 많이 듣고 최근 최애는 쇼스타코비치라는 박 감독은 영화는 극장이라는 공간에 맞게 만들어지는 것이어서 영화의 감동은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흥행과 상도 받는) 포스트 봉준호가 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추석 개봉이 목표인 <어쩔 수가 없다>(이병헌 손예진 주연) 후반 작업 중이어서인지 다소 피로해 보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기념 촬영도 할 수 있어 뜻깊은 결혼기념일이 되었다.


뭔가 인사를 드리고 싶어 마침 재미있게 읽고 있던 유성원 작가의 ‘성원 씨는 어디로 가세요’를 선물로 드렸다.


*참고로 나는 헤어질 결심을 극장에서 3번, ott로 한 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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