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슬퍼펙트_연필에 관한, 연필에 의한 마이크로 히스토리
'연필로 무슨 이야기를 한단말야?' '연필이 책 한 권 될만한 이야기가 있어?' 라는 의심으로 읽기 시작한 책,
<펜슬 퍼펙트_문화 아이콘의 숨겨진 비밀> ( 캐롤라인 위버 지음, a9press 발행).
그런데 이 의심은 내가 얼마나 무식한 인간인지를 스스로 밝히는 질문이었다.
연필은 1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가, 산업 그리고 문학의 숨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 책 <펜슬퍼펙트>는 연필 덕후로 급기야 뉴욕에 작은 연필 가게를 연 캐롤라인 위버가 쓴 책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연필 하나로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친밀함을 경험할 수 있다. 연필의 단순한 각 부분은 다양한 감각을 자극한다. 나무 부분에서는 나무가 자라던 숲 냄새를 맡을 수 있고, 흑연 심은 필기할 때 그 특유의 느낌을 주며, 지우개는 마찰과 열을 이용하여 흔적을 지운다. 이 상호작용은 순수하고 물리적이며 사용자의 마음 속 사고와 생각에 온전히 연결되어 있다. 누구나 연필을 가능한 한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지울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단 한번도 연필 혹은 다른 사물을 이런 애정어린 시선으로 관찰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서문을 읽고 나는 저자에서 굴복당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16세기 영국에서 흑연의 발견되며 시작된 연필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발전하였는지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이 역사적 기술 안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연필은 유럽에서 시작하여 미국을 거쳐 일본으로 오면서 섬세해지고 아름답게 발전했다. 연필의 역사를 들춰보면 <웰든>의 저자로 알고 있는 헨리 데이비스 소로가 연필 회사를 운영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파버 카스텔이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시켰는지도 알 수 있다.
연필 덕후들이 가장 사랑하는 연필 '블랙윙 602'는 스타인벡, 월트 디즈니, 나보비치 등에 의해서 알려지고 그들은 이 연필의 마니아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세계 제 2차 대전 등의 역사의 기록에서 연필은 어떻게 제 역할을 했는지, 연필 광고는 시대에 따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등 이 책은 '연필로 보는 마이크로 히스토리'이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책 속에 등장하는 연필들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다.
'블랙윙'이라는 연필이 어떤 연필이었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했는지, 카렌다쉬의 '스위스 우즈'가 내뿜는 자연의 향기는 어떨지, H와 B로 나뉘는 연필들의 필기감은 어떻게 미세하게 다른지, 그리고 한글을 깨치기 시작하면서 손에 잡았을 연필에 대해서 나는 어쩌면 이렇게 무지했는지....
책을 다 읽고 내가 한 일은 집에 있는 연필을 꺼내보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연필 중에서 책 속에 등장하는 연필이 있어 뿌듯하기도 했으나, 이런 연필이 내겐 '돼지 목의 진주'였구나 라는 생각도 들게 됐다.
그리고 나는 책 속에서 나오는 연필들을 써보고 싶어졌다. 교보문고 핫트랙에 가니 블랙윙과 톰보우, 파버카스텔 등의 연필이 있었다. 그러나 까렌다쉬의 스위스우즈는 구할 수 없었다.
내게 연필은 더존 HB와 4B만이 존재했는데 이렇게 다양한 연필이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는 새로운 세상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무지를 깨닫고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다.
새로 산 연필을 정성스럽게 깎고 이 연필들을 써보며 나는 내게 맞는 연필을 찾게 될 것이다. 지금 나의 이 탐험은 맘에 드는 옷을 찾는 일보다 더 나를 설레게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될 연필은 무엇일까?